[더팁스칼럼] 부자들에게만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작성 2025-11-04 19:53:27
업데이트 2025-11-04 19:53:27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치맥회동’을 했던 깐부치킨 삼성점 출입문에 붙은 이용시간 제한 안내문. 온라인 커뮤니티

 

“젠슨 황 테이블 좌석 이용 시간을 제한합니다. 방문하시는 분들 좋은 기운 받아가세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경주 APEC 기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치킨회동’을 한 가게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당일 밖에서 세 거물의 치킨 회동을 지켜보는 시민들로 치킨집 앞이 북새통을 이루더니,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기 받으려는’ 시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점주가 해당 자리 이용 시간에 제한을 걸었다.

‘이재용 기운 받아간다’는 포스팅도 화제가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방문한 한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이 회장이 준 현금 팁 5만원을 쓰지 않고 ‘대대로 보관’하겠다고 올렸다. 그는 코팅까지 한 돈을 “평생 쓰지 않겠다”고 했다.

세계 최고 부자들의 소탈한 모습은 단연 APEC 기간 중 큰 화제였다. 특히 재벌가 자제인 이 회장, 정 회장과 달리 자수성가한 젠슨 황 CEO에 대한 ‘회고담’도 속속 올라왔다. ‘2000년대 초 용산 전자상가에 혼자 영업하러 자주 왔다’는 식이다. 젠슨 황이 사업 초기 직접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직접 찾아다닌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황 CEO도 이번 방한에서도 “한국 PC방 덕분에 엔비디아가 성장했다”고 했다.

코스피 최고가를 경신하고, 국민연금은 최고 실적을 내놨다.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 행사도 악조건 속에서도 훌륭히 치러냈다. 세계 정재계 수장이 한국을 찾아 ‘대한민국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든 걸 보며 야당조차 존재감을 잃을 정도의 분위기다.

그러나 이들의 소탈함은 철저히 짜여진 ‘쇼 비즈니스’다. 오해는 금물이다. 쇼 비즈니스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사악한 거짓말’이란 뜻은 아니다. 홍보해야 할 지점을 잘 아는 유능한 비즈니스의 일환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그들의 거짓이 아니라 우리 안의 모순이다. 부끄러움 없이 세계 최고의 부자를 ‘추앙’해도 되는 사회, 그들의 ‘기를 받겠다’는 것이 모두의 공감대를 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노골적으로 부를 선망하고, 부자를 추앙하는 사회에서 평등과 약자에 대한 가치는 쉽게 무시된다.

같은 시기 ‘산재 사고’로 20대 청년이 목숨을 잃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은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진행했다. 산재 신청을 취하한 것이다. 보도 이후 유족과 거액으로 합의했을 거라며 다시 유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밀려나왔다. 이태원 참사에 정권이 바뀐 이후 처음으로 추모 사이렌이 울렸으나 ‘시끄럽다’는 민원이 많이 접수됐다. 노조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새벽배송을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자마자 ‘귀족노조’와 ‘현실 모르는 좌빨’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각종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세계 최고 부자들에게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냉철하고 불도저같은 면모와 소탈함이 존재할 수 있다면, 약자들의 얼굴도 입체적일 수 있다. 쉬운 논리다. 아들의 때 이른 죽음이 원통하지만, 이미 남은 삶을 ‘대의’를 위해 투쟁에 바치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사과와 보상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더 있다. 한 가지 주장은 다른 면을 모두 지우는 게 아니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새벽배송을 재검토해야한다’는 주장은 지금 당장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주장이기보다, 소비자가 편리함을 누리고 플랫폼이 막대한 수익을 얻는 사이 그 위험부담과 수익은 누가 갖는지를 제대로 검토해보자는 사회적 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새벽배송이 편리한 것과, 새벽배송이 노동자를 죽이는 일은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5만원을 팁으로 선뜻 줄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이재용 회장이, ‘익숙한 닭뼈 발골 테크닉’을 가질 정도로 야무지게 치킨을 뼈까지 뜯어먹을 수 있단 걸 함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자들에겐 두 개의 얼굴이 있을 수 있다. 사악하거나 소탈하거나. 약자들은 약자로만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선 아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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