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팁스칼럼] AI 교육 가이드라인 만들고 교사 연수까지… 날개 단 美·EU·日, ‘손 놓은’ 대한민국
지난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은 혜성 충돌 위기의 지구를 다룬다. 천문학자 박사과정생인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그의 지도교수인 랜달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자신들이 발견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거란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대통령, 언론, 기업가 등을 차례로 찾아가지만, 이들이 감지한 위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권한과 책임이 있는 이들은 모두 각자 자신의 이득을 기준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대중은 선동당한다. 결국 인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AI 시대를 맞는 대한민국의 교육도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해 시작된 AI 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지위 관련 논쟁이 AI와 교육 분야의 모든 이슈를 장악한 채, 정작 중요한 AI 교육의 방향성 논의는 시작조차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11일, AI 디지털 교과서를 학교 재량에 따라 선택하는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이에 대해 전교조 등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보인 반면 AIDT 제작사는 대통령실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반대 움직임에 나섰다. 문제는 AIDT 논쟁만을 지속하면서, AI 시대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갈 방향성을 짚어보는 논의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강국’ ‘소버린 AI’ 등을 주창하지만 산업계와의 만남에 집중하고 있다. 교육계 역시 마찬가지다. AI 교과서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싸움에만 골몰한 채 디지털 시대 교육에 관한 기본 지침, 방향성에 대한 본질적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美·EU·日까지 …AI 교육 가이드라인 만들고, 교사 연수하고 반면 선진국은 이미 AI와 교육의 ‘관계성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미국이다. 미국은 중앙 정부와 주 정부, 교원 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교육 분야에서의 AI 사용 지침을 확립하고 이에 대한 인식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먼저 백악관은 지난해 4월 ‘미국 청소년과 AI 교육 촉진’이라는 행정 명령을 내고 AI 문해력 증진, 교사 전문성 강화, 산업 연계, 윤리성 강조 등 AI 교육 전략을 배포했다. 이에 따라 미 교육부도 움직였다. AI 도입 시 인권 및 차별 이슈 검토를 의무화하고 연방 보조금을 받는 학교의 경우 이에 대한 책무성을 크게 강조했다. 전미교사협회(NEA)는 △문해력 강화 △윤리, 편향 대응 △학생 및 교사 인권 보호 △데이터 정보보안 △사람 중심 AI 등 5대 원칙을 확립하고 각 학교에서 교원들이 이를 기반으로 AI를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이를 기반으로 미 전역에서 AI 활용 교사 연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올라탄 것은 국가나 지자체 단위뿐만이 아니다. 교육을 매개로 다음 세대의 AI 신인류를 자신들의 제품 생태계 안에 포섭하기 위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거대 IT 기업들까지 적극 나서고 있다. 사회공헌을 내세워 교원 대상 AI 교육, AI 분야 취업 교육, AI 리터러시 교육은 물론 AI와 교육, 경제사회를 연구하고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연구소까지 출범했다. AI 교과서에서 아날로그 교육으로 돌아간 지역까지 있는 EU는 AI 활용 부작용 줄이기에 가장 적극적이다. 2025년 2월 발효한 ‘AI ACT’ 중 AI 시스템 운영자가 AI의 윤리성 관련한 필수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교육 플랫폼에서는 AI 수업 윤리 및 안전 가이드를 배포했다. 각 나라나 지역에 따라 세부 내용은 차이가 있지만, 주로 AI가 정치적 편향성을 갖지는 않는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 및 혐오 기반 사상을 퍼뜨리진 않는지, AI 사용 과정에서 (특히 미성년자인 학생들의) 개인정보 보호가 이루어지는지 등이 중점 관리 대상이다. 이를 기반으로 이웃나라 일본도 이미 수업 중 AI 활용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일본 정규 교과서인 ‘정보 1’ 교과서 13종 중 11종에 ‘생성형 AI 활용’ 이라는 단원이 포함돼있고, 이 과정에는 프롬프트 작성법 등 실무적인 내용부터 개인정보 유출 주의 등 주의사항까지 포함돼 있다. 물론, 교과서 내용은 문부과학성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근본적 방향 설계 없인 '파국' 피할 수 없어 이들 선진국이 미래를 보고 교육과 AI 활용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넘어 부작용과 리스크를 최소화한 접목에 노력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지난 2년을 특정 정책 하나를 둔 싸움에 매달려왔다. 이런 근본적 고민 없이는 AIDT가 시행돼도, 폐기돼도 문제다. 시행된다면 AI와 교육,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바에 대한 비전과 그를 담보할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윤리성 문제, 교육의 질 하락 등 부작용을 피할 수 없고 폐기된다면 앞서가는 AI 교육에 뒤처질 뿐 아니라 에듀테크 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AIDT 도입과 폐지 중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오답인 상황을 만들고 허우적대는 모양새다. 영화 <돈룩업>의 결말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첫째는 파멸하는 지구를 뒤로 하고 우주로 도망가는 기득권층이다. 둘째는 일상 속에서 종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AI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파도가 영화 속 지구에 들이닥치는 피할 수 없는 혜성이라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영화는 마지막 쿠키영상에서 실마리를 보여준다. 혜성 충돌 후 지구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다. 마지막 몇 초간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재건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AI 시대 교육 전환에 가장 먼저 우주선을 타고 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셋째 부류의 사람이라도 돼야 하지 않을까. 놓친 기회를 받아들이고, 현실을 돌아보고 다시 제대로 된 삶을 만들 실마리를 모색하는 사람들처럼. 가장 최악은 이 영화가 조롱하는 부류로 남는 것이다. 혜성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눈앞의 이득만 따지다 막을 수 있는 종말을 방치한 사람들.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기본 AI 시대'는 AI라는 큰 파도를 넘어서기 위해선 사회, 그를 이끌어나갈 교육과의 관계 맺기, 방향성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라는 혜성 충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동체의 미래를 보며 마음과 머리를 맞댈 혜안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