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팁스가 찾은 강사] ‘월 30만원 벌어도 천직’… 잘나가던 입시 강사 그만두고 ‘식물 전도사’ 됐다
작성 2025-04-23 22:01:39
업데이트 2025-05-08 20:20:57
고양시 행신동 자택에서 만난 안혜진 작가가 <더팁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더팁스

 

‘덕업일치’. 좋아하는 일(덕질)과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같다는 뜻의 신조어다. 쉽게 말해,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산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덕업일치’의 삶을 원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1인 식물 스튜디오 ‘정글라’를 운영하는 안혜진(44) 대표는 덕업일치의 삶을 이뤘다. 정글라에서 분갈이 등 일반 식물 관련 서비스도 제공하지만, 실제 일의 대부분은 식물 관련 강의다. 주로 가드닝 방법이나 플랜테리어 등을 주제로 워크숍을 직접 열거나 문화센터, 기업 등에 강의를 진행한다. 지난 2023년에는 이런 경험을 담은 책  <어쭈구리 식물 좀 하네>(넷마루 출판, 16800원)도 출간해 꿈꾸던 ‘작가’ 타이틀도 달았다. 고양시 행신동 자택에서 안혜진 작가를 만나 식물을 기르고, 그 기쁨을 나누는 일로 생계를 영위하는 ‘덕업일치’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안정적 수입과 맞바꾼 건강, 행복… ‘월 30만 벌어도 이 길’ 절박함이 만들어준 ‘덕업일치’의 삶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것, 모두가 꿈꾸는 삶 아닌가요.

“너무 좋죠(웃음). 2019년부터 시작했으니 지금 7년 차인데, 지금은 다행히 식물이 ‘밥벌이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네요.”

-어떤 일을 주로 하세요?

“지역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기업체에 출강을 나가기도 하고,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꾸미는 협업을 진행하기도 해요. 가장 많은 건 강의죠. 5명 이하의 소규모 워크샵부터 20명 이상의 강의 등 다양한 규모로 하고 있어요. 제법 꾸준히 매달 제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목표는 ‘일주일에 7만원 벌기’였을 정도니까요.”

-일주일 7만원이요?

“식물 창업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늦으면 오후 5시, 빠르면 2~4시에 출근하는 직장 외 시간인 평일 오전과 주말 시간엔 꽃집 일을 거들거나 화분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함께 했어요.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말고 ‘식물로 먹고살 방법 찾아보자’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한 달에 딱 30만원만 벌자’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대략 나누면 일주일에 7만원인데, 그걸 다시 나누면 중대형 화분 한두 개만 배송 나가면 벌리는 금액이거든요. 그렇게 작은 목표를 세우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렇게 경험을 쌓아 강의를 시작하신 거군요.

“제 전직이 영어 강사거든요. 가르치는 일은 자신 있으니 가드닝과 플랜테리어 관련 강사를 하기로 했어요.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을 통해 가드닝 원데이클래스를 한다고 알리고, 유튜브로 튜토리얼을 찍어 홍보했더니 다행히 강의 의뢰가 이어지면서 바쁘게 보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거죠. 사람들이 모이는 강의를 하기 어려워졌잖아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죠. 통장에 딱 7만원만 남아서 앞이 막막할 때도 있었어요.”

-덕업일치에서 ‘덕’만 남은 거네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갈 생각은 안 하셨나요?

“영어 강사로 돌아가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단 걸 알았지만 전혀 돌아갈 생각은 안 들었어요. 오히려 ‘7만원이면 식물 하나 더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보며 이 일이 저에게 ‘천직’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버텼더니 다시 강의와 워크숍이 이어졌고 책까지 내게 됐네요.”

-어릴 때부터 식물을 좋아하셨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먼 길을 돌아왔죠. 30대 중반이 돼서야 식물을 접했고, 일로 만들었어요.”

-전엔 어떤 일에 빠져있었나요?

“음악이요. 재즈 피아노를 배우려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어요. 그러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하게 된 일이 입시 학원 영어 강사였는데, 일 자체는 자신 있었지만 점점 지쳐갔어요. 학생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켜야 했고, 매일매일은 물론 매해가 반복되니까요. 결국 내가 좋아하고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단 결심을 하게 됐죠.”

-그래서 식물 관련 일을 하게 됐나요?

“아니요(웃음). 처음엔 영어 번역가가 될 생각이었어요. 물론 번역 공부도 쉽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스로 이석증까지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번역 공부용으로 들춰본 한 미국 잡지에서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고 ‘이거다’ 싶었어요(웃음). 지금 생각하면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죠.”

-운명처럼 다가왔네요.

“그런 셈이죠.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식물 애호가들 인터뷰가 수록돼 있었거든요. 집 안에서 정글처럼 식물을 키우는 사람, 아기자기한 작은 식물을 키우는 사람… 취향이나 식물 사랑 방법은 다 달랐는데 표정이 환하고 하나 같이 행복해 보였어요. ‘이게 바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이야’ 하고 깨달았고, 매일같이 새벽 꽃 시장과 화원을 드나들면서 꽃을 사다 집안을 채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꽃보다는 이파리가 오래 가니까 화분을 모았죠. 실제 식물과 함께하는 삶은 상상한 그 느낌 그대로였어요. 정말 살아있는 느낌. 분갈이를 하면 제가 새 옷을 입는 것 같았고, 물을 줄 땐 제 마음속 불순물까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창업을 결심했고,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식물 킬러’가 ‘식물 전도사’ 되기까지… 식물의 교훈은 ‘과도한 애씀 내려놓기’ 깨달아 

자신이 식물을 비교적 뒤늦게 접하고, 식물로부터 큰 위안을 얻어서일까. 안 작가가 가드닝과 플랜테리어를 알리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식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일이다. 안 작가는 “식물 키우기는 바쁜 일상 속 작은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는 일”이라며 “업무를 하듯 잘 키우려고 애쓰고, 죽었다고 ‘실패’라고 상심하지 않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는 “식물은 아주 차분하고 섬세한 사람들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식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나조차도 ‘얌전’과는 거리가 먼 털털한 성격”이라며 웃었다.

-식물을 키우려면 아주 꼼꼼하고 섬세해야 할 것 같단 이미지가 있어요.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하세요. 강의할 때마다 매번 ‘난 세심하지 못해 식물을 키우기만 하면 죽인다’며 이미 실망하고 식물에 마음을 닫은 분들을 만나요. 그럼 너무 안타깝죠. 식물 키우기의 매력은 일상 속 잠시 시간을 투자해 큰 행복을 느끼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늘 ‘너무 잘 키우려고 애쓰지 마시라’고 얘기해요. 대부분 키우던 식물이 죽는 건, 무심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애써서 그런 경우가 많단 것도 꼭 알려드리죠.”

-너무 애써서 망친다고요?

“네. 대단히 잘 키워보겠다고 힘을 주면 줄수록 키우는 식물은 몸살이 나요. 대표적인 게 ‘과습’이죠.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뿌리가 건강하려면 오히려 흙이 최소 5일 이상 말라야 해요. 아낀다고 계속 물을 주면, 오히려 뿌리가 물러져서 적절한 물과 양분을 줄기로 올려보내지 못해 잎이 처져요. 그럼 또 물이 부족한 줄 알고 물을 주게 되는데, 그럼 정말 ‘대참사’로 이어지는 거죠. 그 식물이 죽는 것도 마음 아프지만, 그래서 ‘식물은 어렵다’고 좌절감을 느껴 아예 식물 키우기를 딱 끊는 경우가 많으니 보는 전 더 안타깝죠. ‘그게 아닌데’ 하고요.”

-적당한 무심함이 필요하네요.

“저도 그걸 깨닫는 데 오래 걸렸어요. 지금은 식물을 가르치며 먹고 살지만, 한때는 ‘식물 킬러’라 불렸습니다(웃음). 물을 너무 많이 주거나, 너무 안 주기도 했어요. 식물이 가장 잘 자란다는 남향 창가에서 전멸시킨 적도 있다니까요. 그걸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편안함이 필요해요.”

-편안함이요?

“어떤 종은 며칠 만에 한 번씩 얼마를 줘야 한다는 규칙에 얽매이지 말란 뜻입니다. 날짜보다 흙에 손을 찔러 넣어 말라 있으면 물을 준다는 식도 괜찮아요. 식물엔 정답이 없어요. 시키는 대로 꼼꼼히 해도 식물이 죽을 수도 있으니,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같은 식물이라도 공간마다 습도, 온도, 바람 등이 다르고, 어디에 식물을 키우냐도 변수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러니 ‘잘 맞춰 보자. 안 되면 말고(웃음)’ 하는 식으로 접해보는 거죠. 그래서 ‘식집사란 말을 싫어한다’고 자주 말하는 겁니다.”

-‘식집사란 말이 싫다’고요?

“그 말에 담긴 애정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처음 식물을 접하는 사람들이 갖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세게 말하는 거죠. 동물을 키우는 것과 달리, 식물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길 바라니까요. 실제로 그래도 되고요.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너무 애쓰지 마세요. 바쁜 일상 속 식물에 대한 전문 지식을 키우기 힘들다면 내 생활 패턴에 맞거나 키우기 쉬운 식물을 골라 시작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내 생활 패턴에 맞는 식물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도 성향이 맞으면 잘 살잖아요. 식물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저는 ‘후마타 고사리’가 잘 맞아요. 후마타 고사리는 사람으로 치면 무던한 성격의 식물이에요.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도 죽지 않고 화분은 물론 돌 틈이나 나무에 붙여 키우는 ‘부작’을 해도 잘 커요. 저처럼 프리랜서이면서 밖에 있는 시간이 많고 일상이 규칙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딱 맞죠. 처음 식물을 키워보는 초보자라면 이런 식으로 과습이나 건조에 덜 예민한 식물을 키우는 것도 추천해요. 몬스테라, 셀럼, 스파트필름, 테이블야자, 홍콩야자, 스킨답서스 같은 것들이 있겠네요. 제 강의를 듣는 초보자분들께 항상 하는 얘기에요. ‘즐거우세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라고.”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제 강의를 듣고 나서 용기를 내 식물을 다시 접하고, 실제로 기운까지 밝아진 분들을 볼 때가 많아요. 그럴 땐 너무나 뿌듯하죠. 식물을 돌보는 기쁨을 깨닫고, 방치했던 자신의 삶까지 돌보기 시작했단 분들도 있었어요.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거나 잊었던 일상 속 즐거움을 되찾으면서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자존감이 살아난 거죠. 식물을 키워내는 기쁨도 좋지만, 사람이 변하는 걸 볼 때의 기쁨이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 하나 봐요(웃음).”

안혜진 작가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식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삶의 기쁨을 선사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틈틈이 시간을 내 호주, 캐나다 등 해외의 다양한 식물원이나 식물 가게를 탐방하는 것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그는 “지금 구상하는 건 ‘식물 관광 가이드’”라고 했다. 자신처럼 식물을 좋아하는 외국인에게 전국의 식물원이나 다양한 식생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모두가 강남, 명동에서 하는 쇼핑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요. 한반도의 식생도 정말 아름답거든요. 북한의 식물을 접할 수 있는 ‘국립 DMZ 자생식물원’을 소개하면 얼마나 특별하겠어요?” 앞으로의 포부를 말하는 안 작가의 표정은 처음 땅 위로 고개를 내민 새싹처럼 생기가 넘쳤다. 식물에 관한 자체 제작 매거진 ‘초심’을 냈고, <어쭈구리 식물 좀 하네> 출간에 이어 유학 시절 다진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영문 글과 영상 콘텐츠도 제작할 생각이다.

“사람들이 저를 ‘식물 키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실은 아니에요. 식물을 키우며 무너졌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고, 커리어를 만들고 생계까지 일구고 있잖아요. 제가 아니라 식물이 저를 키워낸 거죠. 오래오래, 할머니가 될 때까지 식물과 함께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쁨을 전하고 싶어요. 인생도, 식물도 너무 애쓰지 말고 조화롭게 즐겁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도 함께 전하면서요.”

 

안혜진 작가는

플랜테리어 스튜디오 ‘정글라’ 대표

반려식물 키우기, 가드닝 클래스, 플랜테리어 기업 출강

플랜테리어 강좌 운영

책 <어쭈구리 식물 좀 하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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