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BBB(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 지난달부터 꾸준히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글자다. 이는 지난달 4일 도널드 트럼프 美 대통령이 서명한 미 연방 법안으로, 자국 우선주의와 감세 정책을 골자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는 해당 법안으로 직격탄을 맞게 된 산업군에 대한 우려를 담은 기사들만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다른 중요한 변화가 예고돼 있다. 해당 법안의 내용 중에는 ‘사립학교에 기부한 금액에 대한 세액공제 제공’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해당 기부금은 장학금 식으로 운영되며 학생은 바우처 지급 방식을 통해 수업료, 튜터링, 홈스쿨링 등 다양한 교육 비용으로 쓸 수 있게 된다.
해당 법안이 발표되자 미 교육계에서는 ‘개인 맞춤형 교육 시대가 열린다’는 시각이 속속 나왔다. 표면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처럼 보이지만, 속살은 이를 통해 개인이 바우처 방식으로 필요한 교육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바우처로 원하는 교육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누군가는 바우처에 부모의 경제력을 더해 더욱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맞춤형 교육’은 곧 ‘사교육의 공교육화’를 의미할 수도 있는 셈인데, 이를 합법화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미 미국에선 이런 개인화 교육과 그로 인한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억만장자인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지난 2014년부터 이미 운영 중인 소규모 학교 ‘Ad Astra’에는 일론 머스크의 자녀와 그가 신뢰하는 소수의 직원 자녀들이 재학 중이다. 이 학교에선 기존 미국 공교육 시스템이 아니라 일론 머스크가 설계한 교육 프로그램대로 운영 중이다. 핵화학, 공학 프로젝트, 기술 강의, 자신감 교육 등이 진행되고 머스크가 곧 수준급 번역, 통역 기계가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국어 교육은 제공하지 않는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자신들이 사들인 집의 부지에 자녀들을 위한 홈스쿨링 기반 학교를 설립했다. 이는 현행법을 어긴 것으로 판단돼 운영이 중단됐지만, 이미 사교육 우위는 전 세계 1%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미국 교육계에서는 이를 두고 ‘맞춤형 교육’과 ‘교육 불평등’이라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교육의 형평성에 관한 논란 외에, 해당 법안 통과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분야가 있다. 바로 에듀테크다. 지난 18일 와이어드 보도에 따르면 2025년 현재 기준 AI 기반 교육 시장은 약 70억 달러 규모이지만, 2034년에는 1,123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AI가 주도하는 시대, 개인 맞춤형 교육은 에듀테크와 함께 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주도하지 않도록, 교육 불평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도덕적 토론을 차치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더라도 에듀테크는 폭발적 성장 잠재력을 담은 분야라는 것이다.
시장 전망이 이토록 밝은 시기에, 울상을 짓는 곳은 전 세계에서 단 한 곳뿐이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AI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격하되고 손실을 떠안은 국내 에듀테크 업체들은 단체 행동에 나섰지만 정부 입장은 미지근하다. 선심 쓰듯 교과서 포털을 통해 AI ‘보조교재’를 제공하겠다는 반응 정도다.
이와 동시에 활로를 찾아야 하는 에듀테크 업체들의 움직임은 해외로 향하고 있다. 연일 대만 등 해외 출판사, 정부와 AI 교과서 개발 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쏟아진다. 국내 에듀테크 업체가 교육에도, 산업에도 AI가 중요한 시기 국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에듀테크 및 교육 발전에 애쓰고 있는 상황이다.
‘소버린 AI’는 결국 AI 교육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일은 정부 혼자서 할 수 없다. AI 교과서 개발을 민간 기업과 함께 진행했듯, 향후 교육과 에듀테크 산업 발전 모두 업계와 정부가 손을 맞잡아야 한다. OBBB 법안 중 에듀테크 관련 내용을 다룬 기성 언론은 한곳도 없다. 이 내용을 언급한 곳조차 <더팁스>가 유일하다.
에듀테크 업계에 무심하다는 것이 우리 정부와 기성 언론들의 공통점이다. 1분, 1초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과 에듀테크의 시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고, 정부를 믿었던 우리 에듀테크 기업은 해외로, 해외로 떠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라, 고칠 외양간조차 남아있지 않으려면 정부는 에듀테크 업계에 대한 홀대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