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인공지능 철학자인 김재인(56)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HK 연구교수는 시대를 거스르는 학자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전 국민을 AI 전사로 만들겠다’고 공표하는 등 인공지능 대세론을 넘어 ‘만능론’을 향해 가는 시대, ‘인공지능은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술과 관련된 철학을 연구하는 그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이자 작가다. AI 바둑 기사 ‘알파고’가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이겨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2017년,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를 앞서 성찰한 내용을 담은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2017)를 펴내기도 했다.
그런 그의 ‘낙관’에는 전제가 있다. 지난 18일 구로동 넷마루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인공지능이 절대 모방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지킨다면 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지능은 인간의 지능 활동 일부를 흉내 내는 것일 뿐 ‘지능’이 아니다”라며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인간의 인간다움을 지킬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패, 비효율이 인간 지능의 핵심
-인공지능은 지능이 아니라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인 ‘머신러닝’ 과정을 생각해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어째서요?
“머신러닝은 쉽게 말해 데이터 사이의 패턴을 읽어내는 겁니다. 아주 뛰어난 버전의 엑셀 같은 거죠.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인간의 지적 활동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선, 인공지능과 인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두 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데이터 사이의 패턴을 읽어낸다는 건 기존의 정보를 인정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정말 이게 정답인가’ 하는 식의 고민은 하지 않죠. 인간의 지적 활동과 그로 이룩한 성과들은 이완 반대 방식으로 성장해 왔어요. 기존의 통념, 사회적 제도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왔죠. 실제적인 변화도 만들고요. 그 과정에서 실패와 비효율이 일어나지만, 그게 결국 인간을 성장시킨 겁니다.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인정하고 빠르게 습득하는 걸 최우선시하는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으론 불가능한 일이죠.”
-두 번째 차이점은요?
“앞서 말한 것과 연결돼 있는데, 지적 활동과 효율성의 관계가 다르죠. 인공지능의 탁월함은 효율성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죠. 다시 말해 실패나 비효율을 허용하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인간의 지적 활동은 다르죠. 과거엔 없던 새로운 생각을 통해 성장한다는 건 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수많은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아니, 그를 통해서만 성장하는 거죠.”
-왜 그런 차이가 생겨날까요.
“인공지능엔 없지만, 인간에겐 있는 게 있기 때문이죠.”
-그게 뭔가요?
“바로 몸입니다.”
-몸이요?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은 신체를 가집니다. 정신적 활동이 정지해도 죽지만, 신체활동이 정지해도 죽습니다. 생존을 위해 몸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아직 파악하지 못한 잠재적인 위험이나 가능성이 있는지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몸이 없는 인공지능은 그럴 필요가 없죠. 최대한 에너지를 덜 쓰는 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니까요.”
-정반대로 움직이는 셈이네요.
“그렇죠. 똑같이 과거의 지식을 배우는 데에서 시작하더라도, 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은 전혀 다릅니다. 인간은 과거의 지식을 배움과 동시에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저 과거의 지식을 받아들여 인간보다 빠른 속도로 처리할 뿐입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도태된다면 그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보다 우월해서는 아닐 거란 얘깁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인간적 지능을 지키지 못할 때 인공지능에 도태될 겁니다. 지금도 그런 징조는 계속 보이고 있어요.”
◇AI 시대, AI 없이 사고해야 살아남는다
김재인 교수는 “인공지능이란 말부터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공지능이란 말 자체가 ‘컴퓨터의 능력이 인간의 지능과 비교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바탕으로 탄생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인공지능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건 1956년 미국에서였는데, 존 매커시라는 컴퓨터 과학자가 학술 회의를 준비하며 연구 보조금을 받기 위해 당시 통용되던 ‘컴퓨터 학습’ 등의 용어 대신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등장시켰다. 이를 두고 프로그램 개발이나 컴퓨터 성능 향상 등 기존에 존재하는 연구 제목을 붙이기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연구처럼 보여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은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 미국 학계에선 새로운 연구 주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인간 지능의 본질적 특성을 되찾기 위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은 ‘공동 뇌’로 사유하는 유일한 존재”라며 “인간 지능의 특별함을 지키기 위해 공동 뇌를 살려 나가야 한다”고 했다.
-공동 뇌가 뭔가요.
“말 그대로 공동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뇌(지능)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지적 활동의 모든 역사가 공동 뇌 그 자체입니다. 인간은 신체를 통한 직접 경험, 지식 전승을 통한 간접 경험을 모두 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동물들이 일부 삶의 지혜를 부모로부터 배우긴 하지만, 상징이나 언어 등을 통해 정확하게 선대나 동시대의 타인이 쌓은 지식을 공유받는 건 인간뿐입니다. 인간이 문명을 이룰 수 있던 것도 이 공동 뇌 덕분이죠.”
-인간의 지적 활동은 타인과 함께 성장해 왔단 뜻이군요.
“맞습니다. 인간 공동 뇌 보존과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연대’입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다시 이 공동 뇌로 선대의 기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개인과 집단이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상호작용을 할 때 인간은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폭발적인 지적 성장을 이뤄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은 과거를 답습하며 멈춰 선 것이라면, 인간은 열려 있는 존재이면서 늘 최첨단을 달리는 거죠.”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군요.
“맞습니다. 인간이 ‘퍼스트 무버’고 인공지능이 ‘패스트 팔로워’인 이유죠. 문제는 인간이 이런 공동 뇌 활동을 잃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점점 사고 과정 자체를 인공지능에 맡겨버리니까요. 인간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지능을 인공지능에 위탁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공동 뇌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야죠. 가장 먼저, 기본적인 사고 과정을 인간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령 글쓰기, 암기, 계산 등을 가능한 직접 해보는 거죠. 인공지능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일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 지능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기초 역량이 필요한데 이런 기본적 사고 활동이 그런 힘을 길러주니까요. 그렇기에 학교가 중요합니다.”
-학교요?
“학교는 공동 뇌를 키우기 가장 좋은 공간이죠. 역사상 늘 그래왔어요. 선대가 남긴 지식을 배우면서도 비판 정신을 살려 토론하고,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국내 학교는 지적 발산보다 암기 중심의 교육만 이뤄진단 지적도 있는데요.
“암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보통 새롭고 대단한 지식은 비범한 천재 한 명이 번뜩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 인류가 쌓아온 축적된 지식에 새로운 요소 하나를 보태는 겁니다. 즉, 공동 노력의 산물이에요. 기존의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기초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암기하고 받아 쓰고 하는 일은 도움이 되죠. 중요한 건 여기서 끝나지 말고, 이를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한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겁니다.”
-비판적 사고, 실패 이런 것들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죠. 학교는 이중성을 가진 공간이에요. 선대의 지식 배우고 그 과정에서 기초 사고력을 높이면서, 동시에 학생들이 과거를 비판적으로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마음껏 실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암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공동 뇌 육성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문제죠. 사람들이 점점 기초 사고력조차 인공지능에 의존하고 있는 걸 심각하게 봐야 합니다.”
-인공지능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시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공지능 활용이 꼭 필요하기에 이런 기초 사고력과 공동 뇌 보존이 중요한 거죠. 인간의 기계 사용 능력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이뤄집니다. 본인의 역량이 높을 때, 기계는 더욱 큰 무기가 될 겁니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지금 인공지능 없이 생각할 수 있는 맨몸의 역량을 키워 놓아야 합니다.”
-맨몸의 역량이요.
“인간 지성을 최대화할 기초 체력으로, 이걸 기르는 데 집중하는 시기가 꼭 필요합니다. 인간적 지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학생은 물론 성인도 계속해서 그런 훈련을 해야 해요. 그래야만 인공지능이 내놓는 지식과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그를 체크할 수 있죠. 그때, 그 어떤 인공지능에도 지지 않는 인간 지능이 생겨나는 겁니다.”
김 교수는 “인간 지능을 지키면 그 어떤 인공지능에도 지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인간 지능의 핵심은 ‘연대’다. 선대는 물론 동시대를 사는 동료와 힘을 합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힘이다.
“인간에겐 인공지능과 달리 몸과, 그 몸으로 협력할 수 있는 동료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조차 인류 전체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기술일 뿐이에요. 인간다운 학습을 포기하지 말고, 공부하는 힘을 키워가야 해요.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인간다움을 지켜야만 인간의 생존과 번영이 보장될 겁니다.”
김재인 교수는
서울대학교 미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철학과 철학 박사
現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前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 <웹진X> 편집위원장
前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
저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AI 빅뱅>, <인간은 아직 좌절하지 마>, <공동 뇌 프로젝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