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노동자 마어캣] 179개의 사고, 그리고 언론의 숙제 – 독자님께도 부탁드립니다.
작성 2025-01-21 15:14:50
업데이트 2025-01-21 16:18:39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고 항공기의 잔해가 1월 15일 모두 수습될 예정입니다.”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의 언론 브리핑이었습니다. 2024년의 끝자락에 일어난 그날의 사고는 누군가의 가족, 이웃사촌, 친구, 동료를 순식간에 앗아갔고, 새해가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나서야 현장은 수습됐습니다.

이번 참사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사고 중 사망자 수가 세 번째로 많은 참사로 기록됐습니다. ‘참사’라는 이름의 ‘하나의 사고’지만 사실은 179명이 사망한, ‘179개의 사고’였고, 현장은 ‘수습’ 됐지만 유가족들의 아픔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사고가 있는 곳에는 늘 언론이 뛰어갑니다. 그것은 직업의 숙명이자 역할이겠지요. 하지만 역할은 그대로일지언정 ‘취재 방식’만큼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모했습니다. 제 지인 중 한 사람은 사고 현장에 뛰어간 기자들을 보고 “선진화 되고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아직 멀었다. 기레기다”하는 비난도 서슴지 않기도 했습니다.

현재 사회부가 아닌 저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일어난 여파를 다루느라 서울에 있었지만 각 언론사들은 급히 사회부 기자들을 참사 현장으로 급파했습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무안공항으로 뛰어간 동료 기자의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시점부터 이틀 동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라고 했습니다. 10년 전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과 다를 바 없는 울음소리가 무안공항 대합실을 가득 채웠고, 유가족들은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가족의 생환을 확인해달라고 공항관계자들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호 취재’ 반성 이후 한발 나아간 ‘보도 준칙’ 대체로 지켜져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어서였을까요. 현장에서는 다행히 무분별한 유가족 취재는 지양됐고, 참사 현장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자극적인 문장들은 줄었습니다. 다만 상황은 무겁고 취재경쟁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다보니 일부 언론들이 슬픔이 채 가실 리 없는 유가족들에게 다가가 동의 없는 촬영과 녹취를 따고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고 관련 최초 브리핑 때는 정부가 기자들만 상대로 하는 ‘언론 브리핑’ 자리를 마련했다가 유가족들에게 “왜 우리에게 설명해주지 않고 이 기레기들에게만 설명해주냐!”라는 항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 다음 브리핑 때는 ‘유가족 대상 브리핑’에 기자들이 배석하는 형태로 진행했다고 하네요.(아마 방송 뉴스를 통해 보셨겠지만 바닥에 노트북을 들고 브리핑 내용을 열심히 치고 있는 사람들은 유가족이 아니라 기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재난보도준칙’은 대체적으로 현장에서 지켜졌습니다. ▲무리한 보도 경쟁 자제 ▲선정적 보도 지양 ▲감정적 표현 자제 ▲유언비어 방지 ▲ 비윤리적 취재 금지 등입니다.

임시 기자실 앞에는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인터뷰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비밀 촬영이나 녹음 등은 하지 않는다. 인터뷰에 응한다 하더라도 질문 내용과 질문 방법 인터뷰 시간 등을 세심하게 배려해 피해자의 심리적 육체적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한다”라는 문구가 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의 행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희생자 장례식장에 찾아가 동의 없이 촬영, 녹취 등을 하다 들키도 했다고 합니다. 독자로서는 ‘2차가해’가 아니고 뭘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현장’ 기자가 ‘데스크’의 압박을 받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 대형언론사는 사고 당일에 ‘무안공항 폭발 제주항공기 승객 175명 전원 명단’이라는 제목의 속보 기사를 내놓기도 했으니, 아직 언론의 ‘참사 보도’ 수준은 갈 길이 먼 것 같기도 합니다. 탑승객 이름과 좌석, 성별 등을 공개했으니 개인신상 보호라는 건 없었던 것이지요.

분명히 재난보도준칙 11조(공적 정보의 취급)에는 “피해 규모나 피해자 명단, 사고 원인과 수사 상황 등 중요한 정보에 관한 보도는 책임 있는 재난관리 당국이나 관련 기관의 공식 발표에 따르되 공식발표의 진위와 정확성에 대해서도 최대한 검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사는 내려갔지만 이것이 아직도 작금의 언론 현실입니다.

△기자의 힘만으로 언론 현실 바꿀 수 없어… 독자의 도움 있어야만 실현 가능

그럼에도 현장에는 ‘기자’가 있어야합니다. 시민들께서 갈 수 없는 현장에서 생생히 사고를 전해야하고 잘못된 것을 잡아 내 더 나은 대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분명 여러분들이 욕하는 건 ‘기레기’이지 ‘진짜 기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별 사연을 ‘신파’처럼 만들지 않고,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클릭 수를 위해 쉽게 언급하지 않는 기자. 현장의 더딘 행정 처리를 지적해서 좀 더 원활하게 만드는 기자.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되 필요한 정보를 전하는 기자.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당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 속에서도 추운 현장에서 참사의 끝을 지켜보는 기자까지. 시민 여러분은 이런 기자들을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진짜 기자’들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제목만 보고도 클릭해주면 안 되는 기사를 분간할 수 있는 독자님들의 분별력 있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독자께서도 부디 기사 하나를 손가락으로 찍으실 때 “이 기사는 제목을 보니 ‘클릭’조차 해주면 안 되는 기사다”라고 생각하시는 기사는 거들떠보지도 말아주세요. 보고 나서 “이런 몹쓸 기사가 있나”하는 생각이 드시면 해당 언론사에 항의를 하든,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를 하든, 하다못해 댓글을 달든 ‘독자’가 존재함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느리더라도 조금 더 나은, 기사다운 기사가 나올겁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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