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고양이를 활용한 상상의 동물을 자유롭게 그려볼까요?”
경기 과천시에 위치한 청계초등학교의 어느 4학년 교실. 교단 앞에 선 이혜림(39) 교사가 밝은 얼굴로 말하자 학생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저마다 책상 앞에 놓인 태블릿 PC를 향한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학생들의 태블릿 PC에 띄워진 화면은 디자인 플랫폼 ‘캔바’. 저마다 ‘고양이 얼굴에 날개를 달아줘’라거나 ‘초록색 고양이를 만들어줘’하는 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금세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고양이가 탄생했고, 학생들의 입에선 이를 묘사하기 위한 영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이 수업을 이끄는 이혜림 교사는 “다양한 에듀테크 프로그램 덕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영어수업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날 수업에서는 캔바를 사용했지만, 이 교사는 수업의 목적과 상황에 따라 ‘옥토스튜디오’, ‘애니케이티드 드로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택해 사용한다. 그가 에듀테크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나라 영어 학습의 고질적인 문제가 문제는 풀 줄 아는데, 자신감 있게 말하지 못한다는 거잖아요. 책을 읽고 단어를 외우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든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모르는 단어를 찾도록 하는 방식으로 영어를 즐겁고 가깝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에듀테크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 교사는 올해부터 3·4학년 영어 전담 교사를 맡게 됐지만 ‘안양·과천 에듀테크 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AI 디지털 교육 전도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에듀테크를 수업에 잘 접목시키는 교사로 정평이 났다. 청계초 내에 디지털 활용 수업 사례를 공유하는 ‘온라인 교무실’을 만들고, 챗GPT 등 유료 프로그램을 구비하는 데 힘쓰는 등 적극적으로 수업에 에듀테크를 활용해왔다.
이 교사는 “요즘 학생들은 애초에 ‘디지털 신인류’라고 할 정도로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세대”라며 “옛날엔 풀, 가위, 종이가 흥미를 유발하고, 다양하고 창의적 수업을 하는 데 쓸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면, 지금은 그게 AI·디지털 도구로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미와 학습 효과 모두 잡는 ‘에듀테크’
-학생들 반응이 가장 궁금한데요.
“훨씬 흥미로워하고, 집중도도 높습니다. 종이 교과서에 적힌 글을 읽고 외우는 것보다 훨씬 재밌으니까요. 제가 고양이 사진을 칠판에 붙이고 ‘Cat’ 단어의 뜻과 발음을 설명한다고 해볼게요. 그럼 영어에 관심이 없거나, 이미 해당 단어를 아는 학생들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고,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영어를 쓰도록 하면 학생들의 몰입도 자체가 달라져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각자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발표하니, 자연스레 배우는 단어의 양도 많아지고요. 흥미 유지와 교육 효과 모두 잡는 겁니다. 교실 현장에서 늘 효과를 체감하고 있어요.”
-어떤 식으로요?
“한글을 떼지 못해 놀림을 받는 학생이 있었어요.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기에 뭘 좋아하는지 물었더니 ‘게임’이라고 하더라고요. 게임 방식으로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앱이 떠올라 사비로 구매해서 그 게임을 하라는 과제를 내줬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저 이제 한글 다 알아요’라는 글을 써서 보여줬어요. 정말 뿌듯했죠.”
-교사가 학생에게 게임을 시킨다는 우려는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웃음). 그래도 세상이 바뀌었잖아요. 전통적인 방법의 공부 과정을 지키는 것보다, 학생이 정말 학습 효과를 얻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어차피 게임을 하는 학생이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쓸 수 있단 걸 가르쳐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부정적 시선을 딛고 만들어낸 성과라 더 기뻤습니다. 에듀테크 활용 교육을 단순히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이른 노출’이라는 시선이 많지만, ‘그렇지만도 않다’라는 걸 증명하는 사례라고 생각해요.”
-그런 우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디지털 기기에 대한 학부모나 교사 등 기성 세대의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에겐 디지털 기기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놀이, 소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요. SNS, 콘텐츠 시청, 게임 등이 모두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지금 세대는 달라요.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릴 정도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요. 학습과 놀이 모두를 이런 디지털 세상을 통해 할 수 있는 세대에요. 학습의 효능 면에서 생각해 볼 때, 일단 학습을 하는 사람이 흥미를 갖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에듀테크는 그 점에서 탁월하죠. 또, 디지털 세상에서의 생존 능력이 중요하다고 해서 생성형 AI와 코딩 교육을 어린 나이부터 시키는 세상인데, 학습을 하는 것만 에듀테크를 쓰면 안 된다는 건 좀 이상하죠. 오히려 에듀테크 기기를 활용해 학습 효율을 높이고, AI나 코딩 교육까지 쉽게 연결할 수도 있죠.”
-에듀테크를 통해 디지털 기기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가르치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게임이나 패드를 사용하는 건 노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하거나 내가 필요한 솔루션을 직접 만드는 데 쓸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는 거죠. 한글이나 수학, 영어를 배우는 데 에듀테크 프로그램을 직접 써본 아이들이 코딩이나 AI 활용 교육에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요. 익숙하니까요. 여기다, 학생들의 평등한 참여를 촉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평등한 참여요?
“아날로그 수업 중 협업을 할 때에는 적극적이거나 학업 성취도가 높고, 인기가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주도하거나 참여의 기회를 독점하는 경우가 많죠. 예컨대, 도화지 하나에 6명의 학생이 한 조를 이루어 그림이나 마인드맵을 그리는 수업을 한다고 하면, 적극적 학생들이 대부분을 완성해내요. 소극적이거나, 그 학생보다 이해의 속도가 느린 학생들은 점점 소외되게 되죠. 그런데 태블릿 PC를 활용해서 각자 자신의 작업을 한 뒤 의견을 나누도록 하면 모든 학생이 눈치 보지 않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거예요. 못다 한 프로젝트를 온라인으로 이어 집에서 추가로 할 수도 있고요.”
-학생들이 더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거네요.
“네, 특히 제가 수업에서 에듀테크를 도입하며 깨달은 장점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고질병인 ‘오답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준다는 거예요.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발표하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봐야 하는 경우도 있죠. 그때는 오답을 말해 창피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태블릿 PC 안에서 답을 수정해가면서 여러 번 시도해 볼 수 있으니까요. 적절한 타이밍에 잘만 활용한다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물론 자신감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게 에듀테크입니다.”
◇AI·디지털 교재, 맞춤형 교육 ‘열쇠’…부족해도 계속 가야
이혜림 교사는 처음부터 에듀테크 활성화를 목표로 청계초로 부임했다. 청계초는 이미 에듀테크 도입에 선도적인 학교였기 때문이다. 태블릿 PC와 노트북, 기타 AI나 에듀테크 도구가 구비된 ‘AI 캠퍼스’가 설치됐고, 창의 융합 활동에 적합한 모둠형 배치로 교실이 조성돼 있었다. 학교의 전폭적 지지와 이혜림 교사의 열정으로 청계초는 에듀테크 도입에 선도적인 학교로 손꼽히게 됐다. 지난해 AI 코스웨어를 도입했고, 올해 AI 디지털 교과서(AIDT)를 전면 도입하기도 했다. 이 교사는 “청계초에서 근무하며 AI, 디지털 교재가 맞춤형 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 교사는 철저한 ‘학습 효율론자’다. 그는 “교사에게 가장 큰 목표는 학생의 학습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것인데, 에듀테크가 효과적이기에 가릴 이유가 없다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교사 1명 당 20~30명의 학생을 담당하는데, 이들을 제한된 시간에 일대일로 지도할 수도 없죠. AI·디지털 기반 교재를 쓰면 학생 개별 단위로 수준을 진단하고 맞춤 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요. 어차피 교실은 학생과 교사가 만나며 아날로그식 면대면 교육이 이뤄지는데, 여기에 에듀테크의 강점을 더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특히 학생 간 학습 성취도의 차이가 큰 경우에는, 이를 좁히는 데 에듀테크가 큰 역할을 해줍니다.”
-학습 성취도 격차 해소에 에듀테크가 도움이 된다고요.
“한 반에 있어도 수준들은 제각각이에요. 제가 가르치는 3학년 학생들의 영어 수준이 그래요. 어떤 학생은 알파벳을 처음 접하는 거의 ‘백지상태’에 가까운데, 영어 유치원을 나오거나 조기 유학으로 네이티브 수준 영어를 구사하는 학생들이 섞여 있어요. 그런데 3학년 영어 교과의 성취 기준은 ‘알파벳을 식별하고 간단한 문장의 의미를 이해한다’로 돼 있습니다. 오히려 같은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저 수준에 맞추어 가르치는 게 더 기계적인 학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영어를 늦게 접한 학생들의 수치심이나 영어에 대한 공포를 자극할 수도 있고요. 각자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에듀테크를 활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어떤 게 있나요.
“작년부터 AI 코스웨어를 도입했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학생의 학습 패턴을 분석해서 맞춤형 학습 경로나 피드백을 제공해주는 AI 코스웨어 사용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채점 시스템과 수준별 문제 추천이에요. 즉각적으로 수준을 판단해 다음 문제를 제시하니 학생마다 밀도 있는 수업을 할 수 있어요. 너무 어려운 문제에 풀이 죽은 학생도, 너무 쉬운 문제에 동기를 잃은 학생도 나오지 않도록 하는 거죠. 여기에 교사의 적절한 관심과 지도가 들어가면 최소한 학생들 대다수가 ‘딴짓’하고 학원 가서 맞춤형 교육을 받는 한국 교육의 고질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요.”
-이때 교사의 역할은요?
“교사는 학생마다 어떤 문제를 얼마나 잘 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어떤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지 포착하는 역할입니다. 학생이 필요로하는 핵심 개념이나 부족한 것을 가르쳐주는 거죠. 코스웨어에 다 맡기는 게 아니라 학생에게 적절한 학습 경로를 찾아주는 거예요. 말하자면 에듀테크가 학생들의 수준에 잘 맞춰 진행되는지, 학생들이 어떤 성취를 이뤄내는지 지켜보며 교사의 추가 설명이나 상담을 진행할 수도 있고, 다른 에듀테크 도입을 고려할 수도 있죠. 단순히 에듀테크에 수업을 맡기는 게 아니라 에듀테크를 포함한 학습 환경 전반을 지휘, 통솔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AIDT 활용도 적극 찬성하시나요.
“기본적으로는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AIDT는 국가 주도 개발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더 전향적으로 만들었어야 해요. 가령 ‘선행학습 금지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미 아이들이 알고 있는 심화 개념이나 교과서 밖 지식은 포함되지 않는 게 아쉬워요. AIDT 내 영단어 사전에 ‘오렌지’는 나오지만 ‘망고스틴’은 안 나오는 식이죠.”
-AIDT조차도 에듀테크 활용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보시는 거네요.
“맞습니다. AIDT는 교과서를 에듀테크로 일부 옮겨놓은 식이니까요. 창의성과 학습자 맞춤 교육이라는 에듀테크의 장점이 다 발휘되지 못했어요. 콘텐츠가 교과 과정에 맞춰 이미 구성돼 있기 때문에, 교사의 적극성과 창의성도 발휘하기 어렵고요. 교과서처럼 그저 따라가기만 해야 하는 거죠. 이 단점을 일부 해소한 모델이 경기도교육청의 AI 기반 학습 플랫폼 ‘하이러닝’인데, 여기엔 교사가 원하는 콘텐츠를 직접 넣어 구성할 수 있어요. AIDT가 폐지된 것은 아쉽지만, 애초에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교육 현장의 목소리가 잘 담기지 않았어요. AIDT의 강력한 도입은 교실 내 에듀테크 활용에 소극적인 학부모나 교사의 마음의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죠.”
-마음의 장벽이요.
“교사들이 억지로라도 교실에 에듀테크를 도입하고, 학부모들도 이를 접하면 여러 가지 경험이 나올 거예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경험하면, 디지털 교육의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텐데 그 길이 일괄적으로 막혔어요. 또, 교육적 효과는 단기간에 나오는 게 아니니까 손바닥 뒤집듯 한 번에 폐지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3년의 유예기간은 필요했다고 봐요.”
이혜림 교사는 “더 다양한 에듀테크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학습 욕구를 높일 수 있고, 교육 현장에 맞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필요하다”면서 “교사들이 직접 나서 수업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에듀테크에 교육의 미래가 있다고 본다.
“학교 예산, 교사의 의지 등 현장의 에듀테크 도입엔 많은 말이 뒤따라옵니다. 당장 만족스러운 수업이 나오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처음에 잘 뛰지 못하는 학생이라고 손발을 다 묶어 놓으면 그 학생이 훗날 높이 뛸 수 있을까요? 그건 교육적이지도 않고 개선을 거듭해 발전해 나가기를 거부하는 일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처럼, 에듀테크를 시도하려는 교사와 개발사에도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적인 접점을 살리고, 학생들과 교사의 잠재력을 최고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지금 세상의 가장 큰 자원인 ‘기술’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게 제 꿈입니다.”
이혜림 교사는
경기도교육청 미래교육연수원 교수요원 파견교사
경기도교육청 에듀테크활용교육 선도교원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 초등> 공저
경인교육대학교 컴퓨터 교육과 학사
서울교육대학교 컴퓨터 교육과 석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