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한국 사회를 뒤흔든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국내 출판된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약 30년간 샌델 교수가 진행한 하버드대 정치학 수업 내용을 담은 책으로, 국내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사회에 ‘정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책이 화제가 되고 몇 년째 베스트셀러를 넘어 ‘필독서’ 반열에 오르면서 다양한 논쟁이 이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샌델 교수의 정의론에 대한 거센 열광이 이어진만큼 반작용도 거셌다. 샌델 교수 특유의 ‘문답식 대화’를 통해 사회적 접점을 넓혀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자는 주장에 대해 “실효성 없는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센델 교수 한 사람의 주장을 서로 정반대의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민의힘, 민주당 등에서 각각 근거로 내세우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이어졌다.
2024년 5월, 샌델 교수는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국내 단독 출판서 <마이클 샌델과의 대화>(넷마루 출판, 320쪽, 19,000원)를 냈다. 더팁스 창간을 앞두고 영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통해 만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지적에 대해선 어느정도 알고 있다”면서도 “’대화, 교육을 불평등 해소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단 주장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화와 교육’이란 해법은 탁상공론”이라는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주장입니다. 정치는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이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옳다’거나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게 모여 정책을 만드는 힘이 됩니다. 그러니 ‘어떤 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누군가 ‘정치적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 말을 통해 정치를 하는 겁니다. 실은 그렇게 되기를 반대하는 거죠.”
-“사회적 대화, 교육 강조는 탁상공론”이라는 말의 속뜻이 ‘불평등 해소를 원치 않는다’는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정치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 서로 다른 사회적, 경제적 계급의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합의가 생기면, 그에 필요한 구체적인 해법을 고민해 정책을 내놓는 게 정치인들이 할 일이지요. 서로 다른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점점 승자와 패자로 갈려 삶 속에서 섞이지 않고,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게 됐습니다.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선 구체적인 여러 정책들과 함께 상황을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대화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능력주의 타파라는 ‘개념’을 불평등 해소의 방법으로 오랜 시간 주장하신 것도 그 때문이군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 사이 능력주의가 ‘신화’에 불과하단 공감대가 생긴다면 세금, 복지 등 다양한 실질적 사회 전반에 대한 정책 변화가 이뤄질 것이 분명합니다. 정치철학은 결코 탁상공론이 아닙니다. 정책을 만드는 실질적인 토대입니다. 생각으로부터 현실이 만들어지니까요.”
-지금까지 사회, 경제 정책이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보시는 건지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능력주의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먼저 짚어야 합니다. 능력주의란 한 개인이 가진 능력을 기준으로 사회적, 경제적 자원을 배분해야 하며, 이것이 지극히 공평하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언뜻 합리적인 것처럼 그렇지 않지요.
가령, 한 사람이 최고의 대학을 나와 유능한 파일럿이나 의사가 됐다고 칩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노력이 없었단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로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순수한 결과물일까요? 그렇지는 않죠. 더 좋은 학벌, 사회적으로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직업 종사자들 가운데 고소득, 고학력 부모를 둔 사람들의 비율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으며, 이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 수많은 통계와 연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한 능력을 갖추게 되는 데는 분명히 당사자의 노력뿐 아니라 그저 ‘운’으로 날때부터 주어진 것들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도 오로지 개인이 결과적으로 갖춘 능력만으로 사회적 자원을 나누는 것이 평등하다는 것은, 불평등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주장일 뿐입니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이 자식에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샌델 교수는 이를 두고 “한국이나 미국과 같이 능력주의의에 대한 믿음이 강한 선진국에서 흔히 보이는 불평등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줄곧 한국을 미국과 더불어 ‘능력주의로 인한 불평등이 극심한 나라’로 지목해왔다.
샌델 교수의 지적은 통계가 뒷받침한다. 국내 상황은 특히 심각한 편이다. 지난 8월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구 자녀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비율은 소득 하위 20% 가구 자녀 5배 높다. 이는 새로운 발견도 아니다. 지난 2017년 한국장학재단 연구에 따르면 서울대 재학생의 70% 이상이 가구 소득 9분위 이상 가구 출신이다. 소득 수준 9분위는 가구 당 월소득이 893만원 이상인 가정을, 10분위는 가구 당 월소득이 1200만원 이상인 가정을 뜻한다. 통계의 범위를 이른바 ‘스카이’라 불리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로 넓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절반에 가까운 46%가 9분위 이상 가정 출신이며, 10분위 가정 출신 비율도 전체의 30%에 달했다. 반면 기초,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저소득 가정 출신 학생 비중은 스카이 전체를 통틀어 단 6%에 불과했다
◇’공동체의 더 많은 선’ 중요… 진보-보수 사이 현실적인 접점 찾아야
-교육을 통한 불평등 해소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크게는 두 가지가 있겠지요. 지금껏 우리 사회가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과 지금껏 ‘패자’라 불리우며 소외됐던 사람들이나 직업군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였으나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에게 더 좋은 직업으로 진출이 가능하거나, 이른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예컨대, 하버드 입학 심사 과정에서 오로지 한 학생 개인이 갖춘 결과적인 능력치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제출한 서류에서 보이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죠. 가령, 단순 성적만으로 하버드에 입학하기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의 학생이 있다고 칩시다. 이 학생들 중 가정 형편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등의 방법도 있겠지요.”
-입학 서류 내용으로 경제적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출신 지역 및 거주지, 출신 학교명, 포트폴리오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학생의 포트폴리오를 보고도 알 수 있죠. 가령 한 학생의 비교과 포트폴리오가 라크로스, 아이스하키와 같은 스포츠, 하프와 같은 악기 등 부모의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 필수적인 항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합시다. 축구, 농구와 같은 스포츠, 기타와 같은 악기와 지역 내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등으로 포트폴리오가 채워진 학생과 비교할 때, 전자는 아주 부유한 집안 출신일 확률이 크고 후자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했을 확률이 크죠. 이 아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를 대학 입학 과정에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하버드의 경우 여전히 동문의 자녀를 입학 과정에서 우대하는 ‘레거시 제도’가 존재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기서 다시 고민할 지점이 나오는 겁니다. 좋은 질문이에요. 학력의 대물림이라는 측면에서, 누군가 제게 “레거시 제도에 찬성하느냐”고 원칙적인 입장을 묻는다면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제게 하버드의 교수로서 단순한 레거시 제도가 아니라 ‘기여입학’과 같은 형식을 누군가 묻는다면 고민이 깊어집니다. “실력으로 하버드에 입학하기엔 약간 모자란 1명의 학생을 입학시켜주는 대신, 10명의 뛰어나지만 집안의 뒷받침이 어려운 학생이 하버드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제공하겠다”고 한다면 쉽게 거절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반대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공동체 내 최대 다수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자는 겁니다. 하버드대를 졸업해 그 정도의 장학금을 제공할 수 있는 집안의 자녀라면, 하버드에 입학하지 않아도 이 사회의 기득권으로 살아갈 겁니다. 그런데, 그 장학금이 없다면 하버드에 입학 자체가 어려운 약간 성적이 모자란 저소득층 자녀들, 또는 겨우 합격하더라도 학비나 생활비 등의 문제로 진학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은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의 자녀들 10명의 삶은 어떨까요? 이들에겐 이 장학금이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 답하긴 어렵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때에 어느 쪽이 공동체에 더 많은 이익을 주는가를 고려해서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얘깁니다.”
-정치적으로 최선을 상상하되, 현실화 가능한 해법을 찾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사상가이지만, 늘 현실에 발을 담근 채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부의 대물림 문제에 대해 늘 지적하지만, 그렇다고 한 개인이 나고 자란 소속 공동체로부터 얻는 혜택과 애착을 모두 버리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능력으로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이 모두 틀렸으니 전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단순히 결과적으로 개인이 갖춘 ‘능력’만으로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가장 정의롭다고 믿는 착각을 버리고, 그 격차를 극복할 방법을 찾자는 겁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복지제도, 세금 제도, 입시 제도 개선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육을 통해 계급 상승의 사다리를 만들고, 복지확충과 그를 위한 세수 확대를 통해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운’이 남은 삶을 결정짓는 것을 막는 겁니다. 한 개인이 태어난 환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때문에 최근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존엄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회적 지위나 급여가 높은 직업을 갖게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일이라도 떳떳하고 성실하게 일한다면 기본적인 생활과 사회적 존중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면요.
“대표적으로 청소, 서빙, 배달과 같은 일이 있겠지요. 진입장벽이 낮아 사회적, 경제적인 처우가 좋지 못한 직군이죠. 그러나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우리 모두는 이러한 직업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일들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부분은 지극히 낮은 임금에 시달리면서, 사회적으로도 존중받지 못하며 의료, 교육 등 필수적인 복지 분야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이들이 ‘존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식과 실질적인 경제, 사회적 보상을 만들자는 겁니다.”
샌델 교수는 복지제도 확충을 위한 세수 확보에 대해서도 발언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22년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세금 제도는 단순한 정부의 수익원이 아니다”라며 “세금을 어디서 걷고 어떻게 쓰는지는 각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판단 그 자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실제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 를 통해서도 세금에 의한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의 중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도 샌델 교수는 전설적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사례를 들어 “조던이 천재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는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조던이 주역인 승리가 조던 혼자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라며 성과로 인한 열매를 나눌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잘못된 디지털 기술이 민주주의 파괴… 교실에서의 ‘문답 실험’ 이어갈 것
-교육과 대화를 통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오랜 기간 몸소 대학에서 해오셨습니다. 여전히 그 방법이 유효하다고 보십니까.
“당연합니다. 문답식 강의라고 해서 단순히 의견을 교환하는 수준의 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결론을 낼 수도 있고,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논리의 한계를 깨닫기도 하니까요. 단순히 기능적인 이유로만 이런 방법을 차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회 구성원끼리 합당한 논리로 서로의 주장과 근거를 들어 설득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즉,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누구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시대인데도, 교수님의 지도 방식이 특별하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뭘까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과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이 지극히 부족한 세상이 됐으니까요. SNS의 발달로 모두가 자신이 믿는 것을 떠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결국 광고 수익 창출을 위한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 속에 빨려들어가며 대화와 논의는 실종됐습니다. 사용자가 ‘좋아요’ 할만한 피드만 계속해서 보여주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속에만 갇히게 되고, 점점 더 극단적이 돼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 수업에서는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자료 조사, 필기 등 목적을 불문하고 일체의 기기 사용이 금지되나요.
“그렇습니다. 휴대폰, 패드, 노트북 등은 누구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화 중 나온 이야기를 기억하고 싶다면 손으로 직접 종이에 적어야 합니다. 이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내 의견을 유리하게 뒷받침할 데이터를 몇 개 더 찾아 논쟁에 이기는 것보다 타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스스로 생각해 의견에 동의하거나 반박하도록 하는 연습을 하기 위함입니다. 앞으로도 이 방침은 쭉 이어갈 생각입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대화와 교육이 뻔한 해답이라 불리는 시대지만, 이는 오히려 제대로 된 교육과 대화가 지극히 부족하단 방증”이라며 “인공지능, 디지털화 등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교육과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샌델 교수의 최근 관심사는 민주주의. 근본적인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해선 사회적 대화 회복을 통한 민주주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샌델 교수는 “승자, 패자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건전하게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술 발전 역시 이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의 발전 방향을 정하는 것도 인간입니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인간이니까요. 그렇기에 더욱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교육과 사회적 대화를 포기해선 안됩니다. 잊지 마세요. 사회적 대화와 정의로운 교육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그 주장 자체가 가장 정치적인 주장입니다.”
한편 마이클 샌델 교수의 구체적인 ‘정의 해부론’은 <마이클 샌델과의 대화>를 통해 상세히 알 수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다수를 번역하며 ‘공식 한국 파트너’로 불리는 숭실대 김선욱 교수가 독자들의 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해제를 맡았다. 구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