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을 왜 회사에 다니게 해? 아픈 애를 왜 학교에 다니게 해? 그거 다 부모 욕심 아냐?”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나오는 대사다. 우울증으로 보호병동에 입원했단 사실이 알려진 간호사 ‘다은’(박보영 분)을 해고하라 요구하는 보호자들을 향한 수간호사 ‘효신'(이정은 분)의 일갈이다. 효신은 이런 말들은 모두 “여러분의 가족이 사회 나가면 들을 말”이라며 “본인들만 안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다은을 보호한다.
물론 이런 대사에는 효신의 개인적 상황도 반영돼 있다. 효신 역시 조현병을 앓는 동생과 살아가면서 정신질환자에대한 편견과 차별을 몸으로 느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사를 단순히 캐릭터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말로 생각해선 안된다. 정신질환을 겪는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직접적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데도 취업,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당해선 안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게 옳은 해석이다. 환자 당사자나 보호자의 자기 변호가 아니라, 정신병동의 실질적 1인자인 수간호사의 가족도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고 간호사 당사자조차 예외가 아닐 만큼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의 캐릭터 설정이기 때문이다.
통계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숫자는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이미 전체 정신질환자 수는 4백만명을 넘어섰다. 이중 우울증 환자는 1백만명을 크게 웃도는 상황이다. 그러나 진단을 받지 않아 자신이 정신절 질환을 겪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환자 수는 훨씬 많을 거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진단과 치료에 소극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국가정신건강검진 수검률도 53%에 불과하다. 국민 중 절반은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육공무원법·초중등교육법·학교보건법 개정안,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지난달 중순부터 여야가 앞다퉈 발의한 관련 법안들은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속칭 ‘하늘이법’으로 통용되는 법안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질환교원 심의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해 정신질환으로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교원의 휴·면직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기에 교원의 휴직·복직 심의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거나, 학교마다 학교전담경찰관을 의무 배치한다는 법안도 있다.
정신건강이나 교육 현장 전문가들은 “취지에는 공감하나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해당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이 많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가장 크게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배제다. 정신적 질환을 겪는 교사가 무조건 극단적 폭력성을 드러내거나 좋은 교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증명된 바 없는데도 사회적 낙인을 찍을 수 있다. 2022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의하면 해당 년도의 전체 범죄자 134만여명 중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9929명으로, 전체의 0.74%에 불과했다. 우울증, 조현병, 양극성 성격장애 등 정신질환보다 도덕성과 준법정신의 결여, 과도한 폭력성 등이 강력범죄 발생에 직접적 영향이 크다는 것은 많은 정신건강 관련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 뿐 아니라 아동 보호의 실효성 문제도 있다. 정신적 질환은 신체적 외상 등과 달라 치료 자체를 거부하고도 생활은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정신질환을 앓는 교원을 낙인찍고 업무에서 배제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치료에 나서는 게 아니라 병원조차 가지 않고 질환 자체를 숨기다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도 있다. 정신질환을 앓는 교원에 대한 징벌과 배제를 골자로 하는 현행 하늘이법이 아니라 치유와 지원을 중심으로 한 회복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건 당시 피해 아동이 무참히 살해당한 것 역시, 가해 교사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보다 가해자가 범행 전 교내에서 수차례 폭력적인 행동을 실제로 보였음에도 휴직, 업무 배제, 아동과의 격리 등이 진행되지 않았단 데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현재 상정된 수많은 하늘이법 역시 교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적 행위로부터 아동이 즉각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종류에 상관 없이 정신질환자를 교직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라 오히려 폭력과 배척의 악순환의 고리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맹점도 있다.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사이다’에 중독된 시대다. 대전에서 초등학생 하늘이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은 학교에서 무참히 살해된 지 아직 1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매일 수천 건씩 쏟아지던 관련 뉴스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즉각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사건에 ‘응징’성 법안을 내놓고 시류에 편승하려는 것은 여야를 막론 정치인의 습성이겠으나, 김하늘 양은 드라마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존 인물이란 점을 상기해야 한다. 교육은 물론 안전, 의료 전문가 모두 한목소리로 “하늘이법으론 하늘이를 구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분노가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철저히 연출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다. 현실을 사는 우리는 캐릭터가 아니라, 스펙터클이 아니라 ‘사람’을 봐야 한다. 내 분노를 쏟아내고, 해소하는 일보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 재발 방지를 고민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