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팁스칼럼] 코스피 4000, APEC정상회의의 나라에서 ‘과로사’라니
작성 2025-10-28 18:36:39
업데이트 2025-10-28 18:36:39

‘국가행사주간’이 시작됐다. 오늘을 기점으로 APEC 정상회의가 드디어 시작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포함한 APEC 21개국 수장이 경주에 모인다. 일자가 확정된 한미정상회담, 한일정상회담 등 굵직한 회담이 예정돼있다.

여기에 전세계 재계 리더들까지 힘을 보탠다. 부대행사로 오늘부터 시작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최고경영자 서밋(APEC CEO Summit)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최태원 SK회장 등 국내 인사부터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 CEO, 추쇼우지 틱톡 CEO 등 굵직한 해외 거물들도 참석하면서 속속 APEC의 ‘붐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여기에 사상 최고 지표를 보여주고 있는 코스피도 축제 분위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장중 최고가 기준 10만원, 56만원을 돌파했다. 경사에 경사가 겹치면서 흔치 않은 좋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시그널’도 속속 쏟아졌다. 삼성, SK 등 이른바 ‘대장주’로 불리는 거대 기업이 이끄는 코스피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지만 또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난 7월, ‘핫플’의 대명사로 불리는 베이글 가게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사모펀드에 2000억에 매각된 시점에 26세의 직원이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족 발표에 따르면 사망한 정효원씨가 사망 시기 주 80시간이 넘는 노동에 시달렸고, 이에 대해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운영사인 알비엠 측은 산재 처리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현행 노동법상 주 52시간을 넘을 수 없다. 한 주가 168시간인데,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7일 모두 근무한다고 쳐도 하루 11시간 이상을 근무했다는 얘기다. 근무일이 6일일 경우 일 13시간 이상, 이틀 쉬었다면 하루에 16시간을 일한 셈이다. 사무직과 달리 신체노동 강도가 센 제빵업계의 특성을 생각하면, 신장 180cm에 체중 76kg의 20대 남성인 고인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의 노동이 납득이 간다.

엘비엠의 ‘대박’은 창업자인 이효정(‘료’)씨의 창의성과 감성에 대한 찬양으로도 이어졌다. 그녀 뒤에는 2000억 매각 대박이라는 훈장과 함께 예술성과 감각 있는 브랜드 기획자로서의 이미지까지 덧씌워졌다. 그러나 실제 투자 업계에서는 “브랜드 매각 시점과 과로를 유발한 매장 확장 시점이 겹친 것을 생각해볼 때 매출과 순익을 극대화해 브랜드 매각 가격을 올리기 위한 노력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나 브랜드를 매각할 때에는 당장 달성하고 있는 매출과 이익률을 높여 미래의 기업가치를 상정하는데, 이를 ‘멀티플’을 계산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는 재무제표 등 눈으로 확인 가능한 수치가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 확장세 (지점 확대 정도, 매출 및 이익률 상승 정도) 등 질적 판단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영업이익 242억원인 엘비엠이 2천억원대 매각이 가능했던 것도 이러한 확장세에 기반한 멀티플 계산이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알려진 제빵업에서 인건비 등 비용 관리에 탁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을 거란 분석이다.

암울한 지표는 또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27일 발표한 ‘2023년 소득 이동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전년 대비 소득 분위가 상승한 사람은 전체 15세 이상 인구의 17.3%에 그쳤다. 여기서도 가장 크게 눈에 띈 것은 소등 상, 하위층의 고착화다. 소득 하위 80%에 속하던 국민이 상위 20%로 진입한 비율은 3.5%에 불과하고, 최상위 소득분위(상위 20%)와 최하위 소득분위 (하위 20%) 중 전과 같은 소득 수준을 유지한 사람은 각각 85.9%와 70.1%였다. 쉽게 말해, 계층 사다리를 뚫고 경제적 상위 계층으로 올라간 사람은 지극히 적고, 가장 부자인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그대로 자신의 경제 수준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사회가 됐고, 부의 이동 사다리가 끊긴 것이다.

양적 성장도 중요하다. ‘런베뮤’의 대박이 사모펀드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면, 다시 또다른 투자 기회가 열릴 것이다. 또한 성공한 창업자가 나오는 것은 또다른 창업 도전의 활력을 가져다준다. 코스피가 오르면 대한민국 경제 전체에 대한 전망이 좋아지고 다양한 기업에 돈이 몰리니 경제 성장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전세계 정재계 리더가 우리나라로 모이면, 그만큼 입지와 위상이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뭣이 중한디”. 영화 <곡성>을 통해 크게 유행한 이 대사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환기시킨다. 코스피 4000을 뚫고 ‘지붕 뚫고 날아가며 축배를 터뜨릴 때, 창업자가 2000억 매각에 성공해 벼락부자가 되고 ‘크리에이티브의 아이콘’이 됐을 때 젊고 신체 건강한 청년은 ‘죽도록 일하다’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다.

과거 개도국이던 대한민국은 ‘성장 먼저’의 레토릭이 통했다. 일부 유효하기도 했다. 이제 명실공히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에게 더 이상의 변명은 허용되지 않는다. 성장의 열매를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사회, 적어도 일하다 죽지는 않는 사회, 기본부터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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