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팁스칼럼] AI 디지털 교과서 한일전엔 이미 패배했다
작성 2025-07-22 18:45:43
업데이트 2025-07-22 18:46:02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AIDT 개발사 관계자들이 총궐기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더팁스

체감 온도가 34도에 달하던 어제(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3천여명이 넘는 인파가 가득 메웠다. 이들은 천재교육, 비상교육 등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AIDT) 개발사 관계자들이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은 양산, 쿨토시, 손풍기 등으로 무장했지만 폭염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정해진 모든 식순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이들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 AIDT를 개발하고, 그 과정에서 수십에서 수천억원을 투입한 회사 관계자들이다. 돈으로만 환산될 수 없는 것도 있다. 짧은 개발 기간 내에 정부의 요구사항을 맞추고 검정을 통과하기 위해 늦은 밤과 주말도 반납하고 개발에 매진했다. 양질의 교과서로 만들기 위해서다. 교과서가 될 예정이었으나, 이것들은 이제 ‘원할 경우에 채택 가능한 교육 자료’가 됐다. 사실상 폐지 수순이다.

종이 교과서와 디지털 교과서의 쓰임이 다르니 병행이 가능하단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이미 디지털 교과서를 추진 중인 가까운 나라 일본의 사례가 그를 잘 설명한다. 일본은 이미 이 분야에선 우리나라를 10년 이상 앞서는 중이다. 지난 2013년부터 CoNETS라는 이름의 ‘민관 디지털 교과서 협의체’를 만들고 디지털 교과서의 추진 방향을 논의 중인데, 이 논의 과정에서 나온 회의록, 회의 가이드라인 등 다양한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항상 포함돼 있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라는 점, 즉 단순히 교재가 아니라 교과서가 디지털이 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학생들에게 어떠한 학습 환경을 제공해야 할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보조 교재를 디지털화하는 것과 학습의 주된 매개인 교과서가 디지털화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율채택’ 이란 말로 정부 요청으로 개발한 AIDT 개발비에 대한 책임을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 교육을 책임지는 정부의 태도가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은 이미 이 논의를 10년도 더 전에 시작했다. 주요 디지털 교과서 개발사와 정부 관계자들의 민간협의체인 ‘CoNETS’가 설립한 것이 2013년이다. Connecting to Next Education for Teachers and Students라는 뜻을 가진 이 협의체에는 교과서를 발간해온 출판사 ‘대일본도서’ ‘실업출판사’ 등 12곳의 주요 출판사 및 교육 관련 기업은 물론 디지털 교과서를 위한 통합 IT플랫폼 개발을 맡을 히다치솔루션즈 등 총 13곳의 회사가 참여했다. 일본은 2030년 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을 목표로 교육 비전, 디지털 교육 전환으로 인한 부작용 경감, 인터넷 환경 및 단말기 보급 등 교육 환경, 교사 AI 활용 교육 등 ‘교육의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걸고 준비 중이다.

1년 남짓한 시간,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개발 비용과 부작용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고 개발해온 회사들은 이제 작게는 수십억, 작게는 수천억원대의 손실만 떠안게 됐다. 발빠른 회사들은 ‘검정 탈락이 호재였다’고 기사를 내거나, 해외 진출로 활로 모색에 나섰다. 1년간의 노력은 정부와 교과서 개발사간의 불신만 남은 ‘아픔 뿐인 이별’로 남을 공산이 큰 상황이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별에도 ‘상도’는 있다. 좋은 이별을 해야,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경험을 미래교육을 향한 거름으로 삼아갈 때, 우리나라의 디지털 교육은 민과 관 사이에 커다란 불신만 남겼다. ‘백년지대계’ 교육에 정성을 쏟아도 정부 한 마디면 모든 게 허사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만 남은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개발 양상과 닮았다. ‘빨리빨리’ 정신에 입각해 추진하다, 모든 책임은 외주화한다. 사고가 나면 ‘당한 놈’이 알아서 수습해야 한다. 사회는 저 멀리 갈 길을 간다.

이날 이들이 주장한 것은 두가지다. “(AIDT)를 1년이라도 써보고 결정하자”는 것. 두번째는 ‘민간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하자’는 것. 이미 디지털교육 1차 한일전은 패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격차는 피할 수 있다. 정부는 개발사와의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올해 AIDT에 관한 논의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디지털 교육의 미래와 비전에 관한 논의가 돼야 할 것이다. 일본이 12년전에 시작한 논의를, 이제라도 시작할 때다.

저작권자 © 더팁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400

더 팁스
주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디지털로 33길 48, 대륭포스트타워7차 20층
전화 : 02-597-2340
등록번호 : 서울 아55691
등록·발행일자 : 2024년 11월 4일
발행인 : 김맹진
편집인 : 임영진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임영진
청소년보호책임자: 김령희
Copyright by 더팁스 All rights reserved.
보도자료 및 제보 메일 news@thetib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