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팁스칼럼] 이상한 나라의 공동체와 책임
작성 2025-08-26 18:32:20
업데이트 2025-08-26 18:32:20

“책임감도 없는 XX들.” 인터넷 뉴스 댓글창을 열면 쉽게 보이는 댓글이다. 의사, 교사, 소방관, 경찰, 공무원은 물론이고 자영업자에게까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요구한다. 대부분 저속한 표현들로 남겨져 있지만, ‘애써’ 교양 있는 버전으로 순화해보자면 직업적 윤리와 사명을 지키고, 자신의 사익보단 공익을 추구하라는 일갈이다.

댓글창을 보다 보면 가끔 놀랍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이토록 강조하고 있다는 걸 보면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나만 인성이 저열한 걸까?’ 가끔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토록 사명감, 책임감,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라니.

여기 다른 공통의 목소리가 있다. 지난 22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을 재수사하라’는 국민청원이 게시 3일 만에 동의 인원 5만명을 넘겼다. 해당 청원은 국회 소관 상임위인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올릴지 논의를 거치게 된다. 이 목소리는 어떤가. 5만명이 사흘만에 동의했다는 것은 교원이나 교원 가족들만 동의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약 2년 전, 서울 강남구 서이초에서 학부모의 극심한 민원으로 교사가 사망한 해당 사건으로 교권 회복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교권 5법’이라 불리는 각종 법이 개정되거나 시행됐지만, 정작 해당 민원 학부모는 ‘무혐의’를 받고 처벌되지 않았다. 해당 청원은 이 학부모에 대한 재수사를 진행해달란 취지다.

교사 사망에 직접적 영향을 준 학부모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재수사하고 상응하는 벌을 받도록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분노완 달리 교권보호를 위한 제대로된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분노는 쉽고 대책 마련은 어렵다. 분노는 즉각적이고 대책 마련은 지난한 길이다. ‘사회적 책임감’ ‘공동체의 책임’을 지는 일은 즉각즉이고 쉬운 일일까. 아니다. 지난하고 어려운 길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일찍이 2000년대 초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민원을 일삼는 갑질 학부모를 ‘괴물 학부모’라 부르며 사회 문제화되기도 했다. 이후 완벽하진 않으나 몇 가지의 교권 보호 조치가 시행됐다. 대표적인 게 ‘민원 콜센터’다. 일본 시즈오카현 스소노시에서는 지난 5월부터 학부모 민원은 교사 대신 전담 콜센터가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옳은 방법일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교사가 민원에 시달리니 ‘아예 통화를 하지 말라’는 식은 ‘사회적 책임감’이나 ‘공동체’와의 하등의 관계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더 큰 분절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제 청원은 국회에 던져졌으니, ‘공동체’의 구성원인 개인들은 자신들에게 질문을 던져볼 일이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감당할 준비가 됐는가. 학부모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할 필요(?)는 없다. 서이초는 모든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상점에서, 거리에서. 때로 나는 학부모이다가 교사가 된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할 준비가 됐는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대한민국은 각자도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을만큼의 최고의 권리를 누리겠다는 생각은 한국 사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학교 다닐 때 늘 배웠던 기억이 난다. “니 성적이 곧 니 미래야.” “경쟁이라고. 등수가 10등 올라가면 여자는 남편 직업이, 남편은 아내 얼굴이 바뀐다.” 한국 사회에서 기본적인 존엄, 존중이란 것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따내는 거였다. 그러니 모두 당황스럽지 않을까? ‘니 존중은 니가 따내는 거야’ ‘경쟁이야’를 주입받고 자랐고, 그걸 따내기 위해 인생을 걸어 사회 기득권으로 올라섰더니 갑자기 ‘공동체의 책임’을 지란다. 대부분 기득권인 전문직, 고위직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갑, 을을 바꿔가며 산다. 이런 교육이라면 내가 갑일 때 누리는 게 맞을텐데, 갑자기 ‘책임감 없는 XX’가 되기 싫으면 사회에 대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책임을 지란다. 또 이상하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라는 것인가, 말하기 시작하면 북한으로 가란다.

공동체의 책임은 구체적인 말이다. 분노는 멀고 즉각적이고 속시원하다. 누군가에게 공동체의 책임이 있다면 내게도 있다. 서이초 사건에 분노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분노로 끝나지 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는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단 뜻이다. 그리고 공교육에서 이를 적극 가르쳐야 한다. 책임은 ‘지는’ 것이라고. 표출하는 게 아니라고.

청원 5만명의 목소리만큼, 국민들이 서이초 사망 교사의 아픔을 직접 나눠 지길 바란다. 다시 한번, 젊은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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