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섭 장학사는
現 충청남도 청양교육지원청 장학사
現 교육콘텐츠 크리에이터 공동체 공부하자.com 대표
現 충남소프트웨어ICT교육위원회 운영
前 전국초등진로전담교사모임 운영
前 (사)교사크리에이터협회 이사
前 신관초, 효포초, 의당초, 합천초, 이인초, 구산초 교사
前 교육부 진로교육정책과 교육연구사
스무 명 남짓 학생들이 모인 공간. 모두 VR(Vertual Reality·가상현실) 헤드셋을 끼고 앉아 있다. 헤드셋을 내리더니, 다음은 태블릿이나 PC를 켜고 코딩을 시작한다. SF나 미래를 다룬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실의 수업 모습이다. 디지털 기기를 학습 과정에 활용하는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 정부 역시 “디지털 전환이 대세”라며 AI 교과서 도입에 발벗고 나서는 중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 현장은 물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학습 전문가’로 알려진 김규섭 청양교육지원청 장학사(42) 역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한참 멀었다”고 진단했다. 김 장학사는 교육 현장 상황도 줄줄이 꿰고 있는 디지털 학습 전문가다. 18년간 초등교사 생활을 하다 지난해부터 AI·디지털 및 정보 교육 분야 장학사로 근무 중이다. 교육 관련 제도는 물론 교육 현장 상황에도 훤한 베테랑이다. 여기에 지난 2018년부터는 챗GPT, 캔바, 메타버스 등 ‘AI 및 디지털 교육 전도사’를 자처하며 교사 대상 연수 및 강의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지난달 28일, 교원을 대상으로 디자인툴 ‘캔바’ 활용 강의 촬영 차 서울 구로동 넷마루 사옥을 찾은 김규섭 장학사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지털 학습 전도사’라 불리는 인물임에도 김 장학사는 교육 현장의 디지털 전환에 대해 칭찬보다는 걱정을 먼저 내놨다. 그는 “현재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사용하는 교실은 20%에 불과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디지털 기기를 통한 교육 혁신을 말하기 전에, 디지털 전환을 할 수 있는 기본 시스템이 있는지 따져봐야 할 상황”이라며 “한마디로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디지털 기술 자체가 교육의 목표 될 수 없어… ‘활용해 생각 넓히는 법’ 알려줘야
-갈 길이 멀다고요.
“교육 현장을 보면 디지털 교육을 가능케 하는 기본 인프라부터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에요. 인터넷 네트워크도 불안한 경우가 많으니, 말도 안되는 일이죠. 여기다 ‘맞춤형 학습’을 디지털 학습의 장점으로 내세우는데 학생들에게 개별 기기조차 보급하지 못해서, 여러 명이 기기 한 대로 나눠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자재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서 교사 입장에선 번거로운 일만 늘어났다는 인식까지 있습니다. 교사가 열의를 가지고 해보려고 해도, 학교가 관련 예산 편성에 적극적이지도 않고요. 한마디로 ‘멀어도 한참 멀었다’ 할만한 상황이란 거죠.”
-교사 입장에선 힘빠지는 일이겠어요.
“그렇죠. 번거롭기만 한데 지원조차 제대로 되지 않으니 열심히 하려다가도 의지가 꺾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안 그래도 아날로그식 교육에 익숙한 교사들이 관련 기기를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기기 사용법과 관련 교수법을 다시 익혀야 하는 상황인데, 현실이 이러니 그런 수고를 감수할 이유가 줄어드는 거죠. 교사들이 ‘변화 적응 역량’이나 ‘디지털 감수성’을 갖춰야 교실이 변할텐데, 그럴 동력을 가지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디지털 학습이 오히려 교육적 효과가 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우려엔 일부 동의하는 점도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 관련해서는 더욱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죠. 기술을 활용해 사고를 확장하도록 해야 하는데, 기술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스스로 고민하는 기회조차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뒷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글쓰기 수업을 할 때였어요. 저도 일반적 답안을 검토하려 ‘챗GPT’에 ‘소나기의 뒷이야기를 상상해줘’라는 질문을 넣어서 확인해봤는데요, 제가 학생들에게 주로 주는 피드백을 반영한 꽤 그럴듯한 답을 내놓더라구요. 사유의 경험을 위한 질문을 던져도,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답을 찾아온다면 아무 의미가 없겠구나 싶어 겁이 덜컥 났죠. 그때부터 수업 과정에서의 생성형 AI활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디지털 전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산업에서도, 일상에서도 생성형 AI는 유용하고 앞으론 더욱 비중이 커질 테니까요. ‘쓰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사고와 창의력을 확장하고, 손쉽게 자신이 가진 상상력과 창조성, 사고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 학생들의 자발성을 떨어트리는 게 아니라 더욱 발산할 수 있도록요.”
-어떻게요?
“생성형 AI 등 기술을 쓰긴 하되, 기술 그 너머의 것들을 ‘생각하는 방법’, ‘기획하는 방법’을 알려줘야죠. 교사는 디지털 기술 활용 시 학생이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식과 사유 거리를 던져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업 중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가상현실에 무령왕릉을 만들고 발굴하는 수업을 한다고 하면, 교사는 무령왕릉과 관련된 역사를 설명해주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활용해서 마인크래프트 내 무령왕릉을 다양하게 구현해 보도록 자극하는 식이죠. 아니면 웹상에 가상 마을을 만들고 이 마을의 문제점과 그 해결 방법을 찾는 수업을 한다고 합시다. 마을 자치, 운영과 관련한 다양한 사례와 관점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학생들의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는 식이죠.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교육과정을 디지털 기기에 일임하는 ‘클릭 교사’가 아닌, 디지털 기술을 발판 삼아 수업을 풍부하게 만드는 거죠.”
◇“쟤 왜저래” 소리 듣던 ‘이단아’ 교사, ‘어쩌다 보니’ 강사에 장학사까지
김규섭 장학사의 강의를 듣는 교사들의 반응이 전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당장 수업 준비도 바쁜데 언제 기술을 배워 수업에 적용하냐”라며 따라가기 벅차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김 장학사는 “교육자로서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늘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장 경험을 했기에 수업과 학생 관리, 행정 업무를 하며 신기술을 배워 새로운 교수법을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아요. 하지만 교사잖아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세상이 변해가는 걸 바라만 보고 있을 순 없죠. 고충은 이해하지만 타협을 허용할 순 없어요(웃음).”
-교육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요.
“정말 쉽지 않았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교직 생활 처음부터 교육자로서 가진 ‘끼’를 발산하고 싶었어요. 정형화된 교육보단 새로운 교육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죠.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획일적인 방식으로 학생들한테 퍼주기만 하니까, 오히려 제 안의 ‘옹달샘’이 메말라가는 느낌이었어요. 일이 많은 것보다, 새로운 걸 할 수 없단 게 답답했어요. 그러다 찾은 게 ICT 교육이었어요.”
-ICT 교육이요?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소문해 이 분야를 잘 아는 선생님을 찾아가 몇 시간이고 그분 모니터 뒤에 서서 수업하시는 걸 관찰하기도 했어요.”
-시키지도 않았는데요?
“네(웃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10명 정도 규모였던 시군 단위의 ‘충남 소프트웨어 ict 교육 연구회’를 150명 규모의 도 단위 연구회로 키우고, 전국의 교사를 모아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공부하자.com’ 플랫폼을 만들어 하루 2~3시간씩 자며 교육 콘텐츠를 찍어냈어요. 보수적인 교직 사회에서 ‘튀는 놈’ 소리도 많이 들었죠. “쟨 누군데 저렇게 판을 벌이냐”는 소리까지 들었죠.”
-꾸준히 하니 알아주던가요.
“포기하지 않았더니 지지해주는 동료 선후배가 생겨났어요. 저처럼 갈증을 느끼고 있는 교사들이었죠.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 자료를 만들고 연구하는 ‘전국교육자료전’에서 1등급을 받아오고, 코로나19 여파로 제가 찍은 온라인 영상 콘텐츠를 찾는 교사가 많아지면서 점차 주변 반응은 긍정적으로 바뀌더라고요.”
-‘별종’처럼 여겨지는 게 신경 쓰이진 않았나요?
“남들 시선은 신경 안 써요. 제겐 그저 디지털 교육 관련 자료를 교사와 학생에게 나눠 주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 있거든요. 좋지 않게 보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 덕에 지금은 디지털 교육 하면 저를 떠올려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이렇게 강사로 활동도 하게 됐구요. 2018년 충남교육청 교육연수원 원격 연수를 시작으로, 넷마루에서 AI와 챗봇 교육 강의를 찍은 게 계기가 됐죠. 또 2020년도 메타버스 관련 연수 촬영이 기회가 돼 책 <메타버스 교육백서> 시리즈도 출판했죠.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뛰었더니, 제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인정 받게 됐습니다.”
김 장학사는 현재 청양교육장학사로 근무 중이다. 교사 시절 한 학급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수많은 교실이 있는 지역 전체 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청양군에서 추진 중인 ‘AI 교육 체험센터’ 건립과, 향후 청양군을 AI 교육 특화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 김 장학사는 “디지털 교육은 지방 소도시에겐 기회”라며 “청양을 디지털 교육 1번지로 만들어 지역 인구 소멸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청양의 풍부한 자연 환경 속에서 디지털 교육을 통해 서울에 뒤지지 않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출산율이나 이주율도 높아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배워서 남주는 일만 하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원래 교육이 그런 거 아닌가요? 남 주기 위해서 배우는 거죠. 바라지 않고 퍼줬더니, 결국 제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이단아’ 소리 듣던 제가 ‘혁신가’라는 말까지 듣게 됐으니 제게도 좋은 일이죠. 제가 교육자로서의 기본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해왔던 일들이 제 미래를 개척해준 것처럼, 교육과 학습의 본질을 잊지 않는 디지털 교육을 통해 우리 지역과 학생은 물론 선후배 교사들에게도 더 큰 미래가 열리게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