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날개 달고 지역 날아오르게” 전남문화재단, 예술 아카이빙에 진심인 이유
작성 2025-06-30 12:21:46
업데이트 2025-07-01 16:30:39
지난 24일 서울 구로동 넷마루에서 영상통화로 만난 박하나 전남문화재단 문예창작진흥팀 차장(오른쪽)과 김선아 전남문화재단 문예창작진흥팀 대리가 <더팁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더팁스

“지역 예술을 알리는 일은, 사라져가는 지역사회를 지키고 문화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지난 24일, 비대면 인터뷰로 만난 전남문화재단 문예창작진흥팀 박하나 차장(40)과 김선아 대리(35)의 목소리에는 지역 문화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전남문화재단은 전남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목표로 설립된 광역문화단체로, 대표 프로그램은 2009년부터 진행한 ‘문화예술지원사업’이다.

지역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재단은 전국 곳곳에 있다. 지역 이름을 딴 문화재단은 모두 140여 곳. 모두 해당 지역의 예술 활동을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남문화재단은 조금 특별하다. 대부분 지역 관계자나 예술가 당사자까지도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이 단순히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전남문화재단은 예술 활동을 아카이빙해 알리는 일까지도 하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영상 기록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영상 기록화 사업은 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된 팀의 활동을 영상화해 유튜브 등을 통해 배포하는 사업이다.

사업을 기획하고 꾸려오는 두 사람은 “지원사업으로 예술가를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시민에게 알리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며 “문화예술 지원사업과 함께 영상 기록화 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3일 순천시 석현동 문화건강센터에서 공연된 무성국악진흥회의 <판소리 태백산맥> ⓒ사진=전남문화재단

 

◇“남기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전남 예술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

-영상 기록화 사업 소개를 부탁합니다. 

“한 마디로 전남 지역의 예술 활동을 영상화해 기록하고, 배포하는 일입니다. 영상 기록화 사업은 저희가 지원하는 사업 중 기록, 홍보가 필요한 사업을 선정해 다큐멘터리 형식 영상으로 기록하고 일반 시민들이 널리 볼 수 있도록 유튜브 채널 ‘전남문화TV’를 통해 업로드하는 일이죠. 공연 실황 등 영상으로 예술 활동의 결과물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예술가 인터뷰, 메이킹 필름 등 다양한 형식으로 예술의 탄생 과정까지 기록합니다. 2020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90여개 작품이 유튜브에 업로드돼 있습니다.”

-기록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예술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잖아요. 2009년부터 문화예술지원사업을 해오며 뛰어난 전남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했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거나 기억되지 못하는 게 아쉬웠죠. 영상으로 보존하면 언제 어디서든 우리 지역의 예술 활동이 알려질 수 있으니까요. 또,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 공개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해 지역 예술을 알리려는 뜻도 있었어요.”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야 했을 텐데, 내부 설득은 쉬웠나요.

“쉽지만은 않았죠(웃음). 특히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2020년 직전 2년 정도는 예산 편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답니다. 2017년까지는 작은 영상 단체에 의뢰해 몇 팀의 공연 실황만 기록했던 터라 예산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재단 내부적으로 봤을 땐 당장 큰 예산을 배정하기 어려웠었고, 결국 2020년 사업 초기에는 5000만원 가량의 적은 예산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은 작게 시작하고, 성과를 보여주자는 생각이었죠.”

-현장 반응은 어땠나요?

“예술가 분들은 기록 작업을 환영하시고, 적극 협조해줍니다. 한정된 관객에게 선보이던 자신의 예술 세계를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또 기록 과정에서 생겨나는 작품에 대한 관심과 질문도 기쁘게 받아들이신다고 느껴요. 특히 작년 연말 성과공유회에서는 ‘내 작품이 영상으로 남아 뿌듯하고 기뻤다’거나 ‘예술가로서 자부심을 느꼈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지난해 11월 16일 무안군 무안읍 승달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된 극단 ‘뻘’의 <창포만에 뜨는 달> ⓒ사진=전남문화재단

 

◇영상 기록화, ‘지역’과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터주는 길

올해는 총 40개(▲공연장 협력 예술단체 지원 10개 ▲청년 예술가 활동 지원 13개 ▲지역특화 콘텐츠 개발지원 6개 ▲창작공간지원 5개 ▲자율기획형 6개) 예술 활동이 기록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개별 예술 작품의 과정과 인터뷰, 현장 실황까지 담는 ‘한 작품만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셈이라, 40개의 기록물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김선아 대리는 “각 사업의 특성에 맞게 작품 연출 과정, 창작 공간 소개, 공연·전시 실황, 작가 및 단체 대표 인터뷰 등을 적절히 구성한다”며 “기계적으로 소개하는 게 아니라, 각 작품의 취지와 특성을 담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공들인다”고 설명했다. 박하나 차장은 “40개 프로젝트를 관리해야 하는 일이니 쉽지 않다”면서도  “지역 예술을 아카이빙 하는 일은 결국 지역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고 살리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예술 아카이빙이 곧 지역의 문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라고요. 

“지원 대상이 전남 지역 예술가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의 작품 대부분이 전남 지역의 전통, 역사, 지형 등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들이에요. 예술가들이 작품이란 형식으로 우리 지역을 표현해내면, 저희는 그 기록을 보존하고 계승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예술가와 재단이 함께 우리 지역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죠.”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요.

“전남 지역의 설화, 민담을 활용한 작품들이죠. 가령 여수 오동도의 ‘어부와 아내’ 전설을 현대 무용으로 재해석한 ‘여수시티무용단’의 <섬섬섬, 오동도>나 여수 거문도의 인어 설화 ‘신지끼’를 토대로 만든 극단 ‘예술마당’의 그림자극 <신지끼> 등이 있죠. 지역 역사를 재해석한 작품도 있습니다. 극단 ‘뻘’의 <창포만에 뜨는 달>이라는 연극은 동학농민운동의 영웅 배상옥을 주제로 했고, ‘무성국악진흥원’의 창작 판소리 <태백산맥>은 여수·순천 사건을 주제로 다뤘죠. 또 극단 ‘새결’의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는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연극입니다. 지역 출신 예술가의 작품엔 자연스럽게 우리 지역의 역사와 예술이 녹아들게 되죠.”

-예술가들이 지역 문화, 역사의 계승자 역할을 하는 거군요.

“맞습니다. 저희 재단은 지역을 위해 존재하는 공적 기관이기 때문에 지역을 기록하는 건 저희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죠. 특히 지금처럼 전남 지역이 소멸위기에 처한 때는 더욱요.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문화 예술 분야는 더욱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보조금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을 더 널리 알릴 방법을 찾은 겁니다.”

-예술가들의 홍보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맞습니다. 특히 예술의 특성상 작품이나 예술가들의 취지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추가적인 활동 의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죠. 공연이나 전시에 초청되거나 다른 정책자금이나 지원사업에 선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좋은 포트폴리오가 되는 거죠. 특히 활동이 어려웠던 코로나19 시절엔 많은 감사 인사를 받았습니다.”

-지역 주민 반응은 어떤가요.

“예술에 관심이 있어도 지역 내 즐길거리가 있는지 몰라서 누리지 못했던 분들로부터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거나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와요. 또 많은 내용이 지역의 문화, 역사와 관련된 것이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쉽죠.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전라남도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긍정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합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지금까지 사업을 진행하면서, 기관과 지역 내에서는 안착했다고 느껴져요. 이제는 전남 지역만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로 우리 지역의 예술이 확산되도록 하는 게 목푭니다. 카드뉴스 등 2차 가공물을 제작하거나, 기록물 제작 및 배포 시기 조정을 통해 더 많이 퍼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술을 날개 삼아 전남 지역을 도약시키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의 문화,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예술을 기록해 잊혀져가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우고, 전남 지역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여러 어려움을 딛고도 기록화 사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전남은 ‘예술을 즐기며,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지역’이란 뜻으로 ‘예향’이라 불리던 곳이에요. 예술은 전남 사람들의 ‘DNA’ 안에 이어져 내려온다고도 볼 수 있죠. 가장 전남다운 예술로 지역에 활기를 되찾아오고 싶습니다. ‘예향’이란 이름값을 해낼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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