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팁스가 찾은 강사] 유보통합에도, 교육 현장 해법도 ‘공동체’…아이들의 더 나은 삶 위한 어른들의 결단 필요한 때
유보통합은 30년간 이어진 교육계 '숙원'이다. 교육에 방점을 둔 유치원과 보육시설인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정책인데,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유보통합'이란 우스개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례적으로 여야 모두 통합이 필요하단 대전제에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어린이집), 교육부(유치원)로 분절된 소관 부처 배정 문제나 법규, 교사 자격 문제 등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유보통합 시범학교를 운영하고, 6월 유보통합 실행계획을 발표하는 등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칼을 뽑아 든 모양새지만 여전히 재원 마련은 물론,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 자격 통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에 유아교육 현장 경력을 바탕으로 '유보이음교육' 분야 전문 강사로 활동하는 이수진(37) 강사도 “정책은 진작 추진됐지만 행정적, 제도적 기반 마련은 아직 미흡하다”고 동의했다. 유보이음교육이란 기간 관 공동연수 운영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유보통합을 도모하는 일종의 '예열 단계'에 해당한다. 다만 이 강사는 "유보통합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유아들에겐 보육과 교육 모두가 필요하다"며 "이제 어른들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보통합의 길, 어린이집·유치원 교사 간 '소통'과 '이해' 중요해 -유보통합이 꼭 필요하다고 보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비슷하거나 같은 나이대의 유아들이 보육 중심의 어린이집, 교육 중심의 유치원으로 나뉘어 다니니까요. 유치원은 인지발달, 탐구활동, 사회적 상호작용 등을 가르치고 어린이집에선 종일 기관에서 정서적 돌봄을 받고 생활과 관련한 교육을 받죠. 현재 교육과정에선 어디를 보내든 한쪽에 구멍이 생기는 거에요. 그런데 유아에겐 두 가지 종류의 교육 모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유보통합이 꼭 필요한 거죠." -강사로 만나는 현장 교사들도 같은 반응인가요. "대부분 취지에 공감합니다. 이미 실제 현장에선 교육과정이 나뉘어져 있어도 자연스럽게 교육과 보육을 동시에 지원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교사 자격과 관련해 혼란스러움 느끼곤 합니다. 두 기관의 교사는 자격 취득법이 다른데, 어느 쪽을 기준으로 자격이 통합되는 건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거든요. 당장 어린이집 보육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는 지금이라도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따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양질의 교육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더 강합니다. 이미 현장에선 두 기관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고요." -어떻게요? “예를 들어, 어린이집에 다니던 2세 학생이 유치원 3세 반으로 진학할 때 각 기관의 교사들이 '교사학습공동체'를 이뤄 학생에게 필요한 지원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식이죠. 가령 바닥을 중심으로 보행하던 어린이집 친구들이 책상과 의자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유치원에 갔을 때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미리 바깥 활동 비중을 늘리거나, 책상과 의자에 앉는 경험을 시키는 식입니다. 또 어린이집과 달리 유치원에는 낮잠 시간이 없는데,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겨온 아이가 오후 시간에 졸더라도 유치원 교사가 아이를 다그치기보단 적응기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식이죠." -개인 상황에 맞추어 대응하는 게 영유아 교육의 가치인가요. “기본적으로 경직된 교육과정을 따르는 초·중·고 교육과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영유아 교육은 학생과 더 가깝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개별 특성을 적절히 고려하고, 학생마다 관심사와 속도가 다를지라도 섬세하게 살펴야 하죠. 나무 하나를 탐구하는 활동을 하더라도, 나무 열매를 갈라보고 냄새를 맡아보는 학생, 잎의 색깔과 계절의 변화에 집중하며 ‘나뭇잎 시계'를 만드는 학생, 나무엔 도통 관심이 없어 개미를 따라다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생 모두 포용해야 하는 게 영유아 교사입니다." ◇교사로 살아보며...‘나'보다 나은 '우리'의 힘을 깨달아 이수진 강사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11년을 근무한 베테랑 교사다. 원래 꿈은 현장 교사보단 연구직이었다. "원래는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과 부모님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싶었어요." 이 강사는 어린 시절 자신을 포함한 학생들의 가치관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생님과 부모님을 보며, 일찍이 '올바른 어른'이 중심을 잡는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대학 입시 시절 자연스럽게 진로는 '교육 공학' 전공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마침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교사를 가르치고 싶다면 일단 그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라”고 조언하며 유아교육과를 추천했다. 이 강사는 "학생, 동료 교사, 학부모와 울고 웃었던 현장은 책 속의 이론과 교육 이상을 실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며 지난 교사 생활을 회상했다. 현장에서 생긴 질문을 해소하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년 80시간 이상 연수를 받고, 늦깎이 대학원생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러다 교실에서 떠오른 고민, 학생들과의 일화, 대학원에서 알게 된 교육 방법들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더니 알음알음 자신을 '유보이음교육',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혁신적 유아교육 접근법으로, 유아·놀이·프로젝트 중심 교육을 추구)' 분야 강사로 찾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부모와 교사를 가르치는' 강사 사이를 넘나들다, 2023년 부모·교사 전문 교육 기관인 '이레교육연구원'을 설립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에서, 부모와 교사를 가르치는 강사가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영감을 받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꼭 대학원에서 만난 교사분들, 동료 교사 가리지 않고 '이런 교육 방법 아세요?', '이런 교육 같이 해보실래요?' 물으며 옆구리를 찔러야 직성이 풀렸어요. 여기에 반응해주는 교사들을 보면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요. 블로그를 통해 들어온 강의를 하면서 교사와 부모들을 만나다 보니 오히려 제 연구 본능, 실험 본능이 자극돼 교육자로서 살아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다양한 교육 방법을 공유하며 고민도 함께 나눌 수 있겠네요. “그렇죠. 제가 지도하는 교사학습공동체가 만들어진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다양한 고민을 토로하고 머리를 맞대 함께 해결하자는 말이죠. 유독 교육에 있어 자율성이 높은 영유아 교사는 내가 하는 교육이 맞는지, 다른 교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홀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교사학습공동체를 지도할 때 일대 다수보다는 작은 집단의 선생님들을 만나며 편히 소통하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에 집중합니다." -어떤 고민들이 있던가요. "만약 어떤 교육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이 된다면, 일단 '교사 중심'이 아닌 '학생 중심'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합니다. 교사학습공동체에서 만난 한 교사의 경우, 자유롭고 창의적인 수업을 지향해 자동차 등 놀이 도구를 주고 마음껏 놀게 했다고 하는데요. 막상 아이들이 멍하니 있거나 엉뚱한 행동을 해 고민이 컸다고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자동차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거나 놀고 싶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구조화된 교육 방식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창의적인 교육법이라도 학생들에게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법을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살피며 그들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하니까요." -현장 교사로 일해본 경험이 강의에 도움이 되겠군요. "그럼요. 잘한 얘기보단 실수한 경험을 통해 공감과 위로, 격려를 전해요.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단 맘은 가득하지만 방법을 몰라 막막해하는 선생님들에겐 해답보다 응원이 필요하거든요. 저도 한때는 제 교육법을 고집하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 학부모 앞에서 위축되고 무력해지기도 했다고요. 현장을 경험한 사람으로 지금의 시행착오를 이겨내고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거죠." -강의를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제 강의를 듣고 학습공동체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진심으로 '행복한 교사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교사 각자가 하는 교육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리기 위해 특별히 노력합니다. 영유아 교사는 아이들과 부모의 '첫 선생님'이잖아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또 그런 선생님은 강의 태도나 워크숍 참여 태도 때부터 눈빛이 다르기도 하고요." -앞으로 목표는 뭔가요. "10년 안에 교사-부모-아이들이 교육계 현안부터 현장 고민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실험할 수 있는 유형의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장점을 합친 유보통합 정책처럼, 교사와 부모, 또 아이들이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보완해 문제를 해결하는 더 큰 단위의 ‘교육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 "영유아 교육은 교육기관과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이루어진다"라며 "지역의 예술가, 정책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도 찾아와 교육적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교육법을 가르치는 강사에서 나아가 AI, 기후위기와 같은 우리 사회 전반을 흔드는 문제와 학생들의 삶의 관계도 교사, 부모와 함께 나눌 계획이다. "교사 시절 한 아이가 유치원을 ‘헤어지기 싫은 놀이터’라고 말한 적 있어요. 배움이 있지만 헤어지기 싫을 만큼 즐거운 곳이라는 말이겠죠. 저도 교사, 부모, 아이, 나아가 지역이 함께 웃으며 대화하고 끊임없는 교육을 추구하는 그런 행복한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수진 강사는 영유아 교사교육 및 기관 컨설팅 교사학습공동체 참여 및 코칭 어린이집, 유치원, 육아종합지원센터, 대학기관, 평생교육원 등 출강 유치원 정교사(1급), 평생교육사(2급) 자격 어린이집, 유치원 현장 근무